본문 바로가기
책과 영화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스피벳'

by GoodMom 2010. 11. 8.

스피벳: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The Selected Works of TS Spivet)

레이프 라슨 지음/조동섭 옮김/비채 2009.7.20 출간

 

 

작년 여름 서점에서 만난 책이예요. 책의 판형이 일반사이즈의 책보다 훨씬 크고 두꺼워, 막 나와서 따끈따끈하게 평대에 진열되어있는 이 책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책 사이드에 각종 도해와 잔잔한 설명들이 함께 써있고 책도 500페이지에 가깝게 두꺼워서..."과학책인가?"하는 생각도 잠시 했던 책이예요.

 

 

 열두살 소년이 서부 몬태나주세어에서 동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있는 워싱턴까지 아메리카 횡단을 하는 여정을 담은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아이의 눈에서 자신과  가족사를 풀어나가는  여행기면서 성장소설,가족소설입니다. 책을 읽는 순간, 책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컴퍼스와 자만 있으면 자신이 보는 것, 알고 느끼는 것들을 모두 도해로 표현할수 있는 재능을 가진 미국 서부 시골 마을 겁 많고 소심한 열두살 소년 <스피벳>은 유명 학술지에  절친한 친구인 욘 박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도해와 지도를 기고해 왔습니다. 어느날 <스피벳>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베어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니 시상식에 와달라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물론 박물관에서는 스피벳이 열두살 어린아이인줄은 모르고 박사학위 소지자로 알고 있어요. 

 카우보이인 아버지와 곤충학자인 어머니 몰래, 짐을 꾸린 <스피벳>은 화물열차에 몰래 탑승한 채로 1800마일, 10개 주를 관통하는 서부에서 동부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긴 여정 위에서,<스피벳>은 시골의 농장에서 곤충학자로 조용히 살아가는 어머니의 고뇌,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총기 사고로 잃은 아픔, 그리고 아버지가 가졌던 오해로 인한 서먹함...가족과 함께 있을 때 가졌던 의문들을 가족과 떨어져있음으로 인해 길 위에서 풀어나가게 됩니다. 홀로가는긴 여정을 통해 <스피벳>이 아픔을 치유하고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오해로 시작된 긴 여정을 통해 가족애를 발견하고 성숙한 아이로 태어난다는 전체구조는 조금은 뻔한 스토리를 가진 성장소설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거친 듯 부드러운 소년의 모험 속에 , 과학과 예술을 결합시킨 독특한 소설 구조로인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집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면, 갈등 구조는 좀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부분이예요. 스피벳이 여행 중 목숨을 위협했던 광신도를 죽였다고 생각했으나 끝부분 그가 한줄로 죽지 않았다고만 설명된 부분이라든지,마지막에 대통령을 만나기 직 전, 경비가 극히 삼엄한 곳에 아버지가 짠!하고 나타난 장면은  너무 짧고 간단하게 해결이 되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피벳>의 아메리카 대륙 횡단기를 좀 더 실감나게 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미국 지도를 검색해서 소년이 가는 길을 찾아보면서 책을 읽었는데,책을 다 읽고 보니,책 시작 페이지에 이렇게 친절하게 도해가 그려져 있더군요...ㅎㅎㅎ


 

 <책 사이드바에 그려진 세세한 도해는 책읽는 또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

앞서 잠깐 얘기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컴퍼스와 자로 그려내는 도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주인공 스피벳의 독백 형식으로 곁들여진 글과 함께 사이드바에 그려진 300여 컷의 과학적 그림과  지도예요.마치,감성이 담긴 세밀화 백과사전같습니다.

처음엔 책도 두껍고 책의 양사이드에 빼곡히 들어 찬 깨알같은 도해와 설명들을 보고, '이것도 다 읽어야 하나?'했는데...책을 읽으면서 이부분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모릅니다.

작가 레이프 라슨은 하버드대에서 20년간 강의한 북아티스트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을으로 갤러리와 공방을 오가며 지도나 그림을 통해 세상을 이해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자랐다고 합니다....역시, 피는 못속여. 자란 환경은 못속여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레이프 라슨은 책의 리얼리티를 살리 위해 소설 속 스피벳이 자란 농장이 있는 몬태나 주를 수없이 방문하고 그 곳에서 동부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까지 가는 갖가지 방법을 상상했다고 해요. 이런 과정 끝에 술 취한 중년의 남자의 여정을 그리려 했던 처음의 방향과는 달리 여리고 소심한 열두살 사춘기 소년의 환상적인 모험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경이롭다! 맥도날드 욕망의 삼지창!>

몰래 탄 화물열차 속 배가 고파진 <스피벳> 맥도날드를 만났을때 맥도날드의 상징 'M'마크를 '욕망의 삼지창'으로 그려낸 부분입니다. 수많은 도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해였어요. 

이렇게 페이지마다 그려넣어진 각종 도해들은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도 이런 자잘한 그림들로 세상을 표현해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스케치 노트도 샀었답니다.(과거형...―。―)

이 책은 지난 여름 남편과 제가 먼저 읽고 책꽂이에 꽂아두었습니다. 슬쩍 겨레가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뜻을 내비쳤으나, 자신의 책은 자신이 고른다는 원칙이 너무나 강한 우리딸은 별 관심이 없더군요. 정말,재밌는 책인데, 펼쳐보기라도 하지...단,한장만 읽으면 쏙 빠져 들어갈꺼야 하는 마음이었으나, 엄마 아빠 둘다 엄청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만 몇번하고 책꽂이에 꽂아두었어요.

그 후로 일년이 꼬박 지나고도 올 가을...어느날 보니 겨레가 이 책을 읽고 있더군요.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서 어떤 책이 제일 재밌어?" 하고 물어보니, 겨레의 명쾌한 답...(겨레는 몇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요. 저는 한권 다 읽어야 다음권을 잡을 수 있구요.)

" 스피벳! 벌들의 비밀 생활도 재밌는데, 최근에 읽은 것들 중에는 스피벳 따라올만한 책이 없던데..."

(딱 한장만 읽으면 빨려들어간다니까...^^)

" 스피벳, 너랑 많이 닮았다는 생각 안했어?  물건자리 집착하는거나, 글 쓰는 거 좋아하는거나, 겁이나 의심 많은거...엄만 읽으면서 너랑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씩 웃습니다. 스피벳이랑 닮았다니 싫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겨레는 책을 읽고 나면 원서를 찾아 보는 습관이 있어요.(대형서점이 가까이 있어 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이 책의 경우, 표지 그림이 마음에 별로 들지 않았다면서 원서 표지가 스피벳 내용과 더 가까워서 더 좋았다고 하더군요.

 

- 겨레가 쓴 '원본과 국내 출판 본 비교 글'궁금하신 분은   http://gyure.kr/26




- 스피벳 홈페이지 http://www.tsspivet.com

- 레이프라슨 인터뷰한 기사 내용은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701708


 



2010.11.5

겨레는 열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