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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미야자와겐지의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by GoodMom 2010. 8. 23.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경옥 옮김/ 이광익 그림/ 사계절

 

 

 

독특한 제목이 눈에 띄어 골랐던 책입니다.

책이 작고 얇아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한편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하고 펼쳐보니 그 옆에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라는 눈에 띄는 제목이 들어옵니다.

이 책에는 이렇게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와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 두편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두 이야기는 미야자와 겐지에 의해 쓰여진 시기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작품 구조가 많이 닮아있습니다. '펜넨넨넨 네네무의 전기'는 1920년에 쓰여졌고,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는1932년에 쓰여졌는데, 작품 구조가 많이 닮아있어 먼저 씌여진 '펜넨넨넨 네네무의 전기'를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전신(前身)이라 본다고 하네요.

 

우선 작품의 줄거리 소개를 해볼게요.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극심한 기근으로 구스코 부도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동생 네리는 '기근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납치 되어 버립니다. 동생을 쫓아 숲이 끝나는 곳까지 따라간 부도리는  천잠사 공장에서 잃을 하게 되지만 화산 분화로 천잠사 공장이 문을 닫자 도시로 떠나기로 합니다. 부도리가 도시로 가는 길에 붉은 수염을 기른 농부를 만나 6년간 수렁논에서 농부를 도와 일을 하며 책을 읽고 공부도 합니다. 수렁논이 계속 되는 가뭄으로 인해 농사를 그만두게 되자 부도리는 책에서 읽은 적이 있던 구보 대박사를 찾아가 가뭄을 막는 비와 비료 만드는 공부를 하고 구보 대박사의 추천으로 이하토부 화산국의 기사가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펜넨 노기사와 함께 일하며 화산의 분화를 막고, 조력발전소를 건설하고 과학의 힘으로 비를 내리고 비료를 주어 모든 농민들이 기근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농부의 아내가 된 어린시절 잃어버렸던 여동생 네리도 만나게 되구요. 하지만 다시 냉해가 다가오는 징조를 알게 된 부도리는 냉해를 막기 위해 화산 폭발을 시도하며 스스로 목숨을 받쳐 냉해를 막습니다.

 

<펜넨넨넨 네네무의 전기>

요괴 세상의 펜넨넨넨 네네무 가족은 극심한 기근으로 부모님을 잃고 동생 마미미 마저 '기근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납치가 되자, 네네무는 십년 동안 하늘에서 다시마 따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더 이상 이 일을 하는 것이 싫어진 네네무는 수도로 가서 부뷔보 박사에게서 공부를 배워 세계 재판장이 됩니다. 세계 재판장으로서 훌륭한 판결을 해내며 승승장구 하던 네네무는 엄청난 훈장과 높은 지위를 얻어 칭송을 듣고  요괴 기예단에서 스타가 된 여동생 마미미와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산무토리 화산 분화를 예측한 네네무를 축하해 주기 위해 축하연을 열게 된 부하 요괴들과 즐거운 축하연을 벌이던 네네무는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 실수로 발을 헛디뎌 요괴 세상 밖 인간세계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며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기근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여동생이 납치 당하자 동생을 찾아 나섰다 길을 잃고 그 곳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는 앞부분의 줄거리는 두 이야기 모두 비슷하게 전개 되어 나가지만, 부도리 이야기와 네네무의 결말은 아주 달라집니다. 

요괴 세상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처음 읽을 때는 '펜넨넨넨 네네무의 이야기'가 좀 더 쉽고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펜넨넨넨 네네무라는 이름도 재밌지만 네네무의 동생 마미미,도시 이름 한문문문문 무무네시 등의 이름들도 재밌고 또 재판장이 된 네네무가 판결하는 사건들에 얽힌 이야기 속 이야기도 겐지 특유의 상상력과 당시 세태를 재밌게 잘 풍자해 놓았습니다. 세계 재판장이라는 자리에 안주하고 만족한 네네무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모든 것이 끝장이 난다는 결말을 가진 펜넨넨넨 네네무의 전기는 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지며 일부 내용이 분실되었고, 뒷부분은 미완성이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어나가는데는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는 냉해가 다가와 다시 기근이 닥쳐 와 그 해의 부도리 가족처럼 될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을 염려한 부도리가 자신을 희생해 칼보나드 화산섬을 폭발 시킨다는 결말은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고, 그 가을에는 거의 평년 수준의 농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시작처럼 되었을지도 모를 많은 부도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많은 부도리와 네리와 함께 그 겨울을 따뜻한 음식과 밝은 장작불로 즐겁게 살 수 있었습니다.


 

미야자와 겐지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형식의 이 두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질문을 던집니다. 출발이 똑같은 두 주인공의 삶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사는 네네무와 모두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받아들일 줄 아는 부도리를 통해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근이나 냉해를 통해 자연은 모두에게 냉혹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겐지는 이 작품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미야자와 겐지가 이 작품을 쓴 시기가 1920년과 1932년입니다. 군국주의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시키고, 세계전쟁 도발에 혈안이 되어있었던 시기를 살아간  겐지는 작품을 통해  평화와 생태주의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가 생전에 추구했던 삶을 부도리를 통해 살게 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가난한 이와테현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란 겐지는 농민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농민들의 수확을 늘리기 위해 비료 연구도 하고, 벼농사 지도도 하고, 농민을 위한 '농민 예술론'강연을 했다고도 하네요.

 

 

은하철도의 밤    

미야자와 겐지/ 아즈마 이쓰코 그림/박경희 옮김/작은책방

제가 처음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을 접했던 것은 3년 전 이었습니다. 겨레가 은하철도의 밤이 재밌다며 몇번을 읽길래 겨레 따라 이 책을 읽으면서였습니다..

몽환적인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어린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가 생각이 났는데, 겨레가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얘길 해주더군요.

 

 

조반니는 가난한 살림에 배를 타고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병든 엄마를 돌봐 드리며 학교에 다닙니다. 조반니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 캄파넬라가 있었는데, 반 친구들이 조반니를 따돌리면서 캄파넬라와도 서먹한 관계가 되어있어요.

 은하수 축제가 열리던 날 밤, 조반니는 친구들과 어울리자 못하고 홀로 강둑에 누워있다 잠이 듭니다. 꿈 속에서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은하철도를 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은하로 여행을 하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열차에 탔던 승객들이  정거장에서 하나씩 내리고 캄파넬라와 둘이만 남게 된 조반니는 캄파넬라에게 헤어지지 말고 끝까지 함께 가자고 말하며 돌아보니, 캄파넬라도 열차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꿈에서 깨어납니다. 마을로 돌아가던 조반니는 캄파넬라가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고 강예 뛰어 들었다가 강에 빠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그리고 캄파넬라를 찾으러 온 캄파넬라의 아버지로부터 조반니의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은하철도가 서는 역의 풍경 묘사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겐지의 상상력이 잘 동원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과 죽음, 신과 인간의 철학적인 사색이 가득 담겨있는 이 작품은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의 <은하철도 999>라는 애니메이션으로 탄생 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죠.

 

 

 

미야자와 겐지는 1896년 일본 이와테현 전당포를 운영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겐지가 태어난 이와테현은 옛날 부터 가뭄이나 냉해가 자주 일어나 일본에서도 척박한 곳이었다고 해요. 중학교 졸업 후, 부모님은 가업을 이어받길 원했지만 겐지는 상급학교 진학을 원해 농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문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데 농업학교 시절 생활과 고등학교 입학 시험 준비를 하면서 읽은 '법화경'은 후에 겐지의 문학 작품에 밑바탕이 된다고 합니다. 과로와 영양실조로 힘든 시절을 보낸 겐지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급성폐렴의 악화로 죽게 됩니다. 

 

 

한동안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집을 골라 읽었습니다. 작가가 표현한 다른 작품들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겐지는 1921년부터 동화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오랜 시간 퇴고와 개작을 했기 때문에 창작연대를 알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또  부분적으로 원고가 분실된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앞서 소개한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경우에도 원작 첫 부분과 중간 중간, 끝부분등이 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해요. 백여편의 작품이 남아있지만 그가 살아 있을 때 출간된 책은 단 두 권으로 시집 '봄과 아수라'와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뿐이라고 합니다.

겐지의 작품을 읽어보면 미래소년 코난을 시작으로 토토로, 원령공주, 나우시카,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이 떠오르더군요.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은 미야자와 겐지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좋은 작품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그 색과 빛이 바래지 않고 모두에게 울림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0.8.23

겨레는 열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