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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가을비 내리는 밤에...

by GoodMom 2010. 9. 7.

 

비가 많이 내리는 저녁...

남편은 늦는다기에 겨레랑 단촐하게 저녁을 먹고

멀뚱멀뚱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에 영화 한편이 생각 나더군요.

이웃집 토토로

 

말 없이 영화를 틀었더니 우리 딸, " 엄마, 토토로 왜 틀었어?"

" 엄마가 좀 보고싶어서..." 라고 했더니

이것 저것 책을 뒤적이며 " 난 안볼건데..." 합니다.

정말 안볼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혼자 묵묵히 토토로를 보고있다보니,

어느샌가 제 곁에 바짝 붙어서 겨레가 더 열심히 보고있네요. 그래서 겨레랑 꼭 붙어서 애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겨레는 함께 있을 때 꼭 붙어있는 걸 너무 좋아해요. 이 더위에...^^)

 

 

이웃집 토토로에서 우리 모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모아보았습니다.

비오는 밤, 아빠 마중을 나간 사츠키와 메이 자매...(메이(May)도 5월,사츠키(さつき)도 5월이란 뜻이랍니다.)

그런데 메이는 피곤했는지 어느 사이 언니 사츠키 등에 업혀 잠이 들었지요.

후두둑 후두둑 우산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어느새 말없이 토토로가 다가와 자매 옆에 서있습니다.

 

토토로에게

사츠키가 아빠 드리려고 가져온 우산 하나를 건네줍니다.

 

 멍하게 우산을 들고 서있는 토토로...

 

한번 씨익~ 웃더니

 

 펄쩍 뛰어 땅을 쿵!하고 울려봅니다.

 

 토토로가 쿵! 뛰는 충격에 나뭇잎에 모여있던 빗방울이....쏴아아 떨어지죠...

 

 이 장면이 저랑 겨레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예요.

비오는 날, 후두둑 창 밖 빗소리가 들리면, 어디선가 토토로가 우산을 쓰고 신나있을 것만 같은 상상...이 들곤 해요.

 

 잠시 후 토토로가 기다리던 고양이 버스가 다가오고...

 

 토토로가 고양이 버스에 오르기 직전...

 사츠키와 메이에게 나뭇잎으로 소중히 싼 작은 선물 하나를 꺼낸답니다.

 

 토토로가 준 선물은 도토리씨앗이었어요.

 정성껏 심은 씨앗이 싹트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매에게 어느 날 밤 또 다시 찾아온 토토로 일행...

 

 사츠키와 메이 그리고 토토로 가족이 함께 힘을 불어 넣어 씨앗에서 싹이 트고 나무가 되어 엄청나게 자라게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는 장면이예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느끼지 못했던 것, 이제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지금도 존재한다'고 마음속 깊이 믿으며 이웃집 토토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제가 요즘 나이를 먹는 것인지..가을을 타는 것인지...

잊고 지내왔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혼자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다 멍~~하게 있다고 겨레에게 혼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느끼지 못했던 것, 이제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지금도 존재한다'는 말 참 좋지 않나요?

 

 토토로는 지난 8월에 개봉한 '토이스토리3'에서도 깜짝 카메오로 출연을 해, 영화를 보다 "아~토토로다!"했었습니다. 저기 컴퓨터 모니터 옆 회색 토토로 찾으셨지요?

토이스토리 3를 만든 픽사는 이웃집 토토로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경의 표시로 토토로 출연을 허락 받았다고 하네요.

토이스토리 3, 겨레랑 보다가 마지막 앤디가 대학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펑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열세살 사춘기 딸과 마흔줄 넘어선 사추기 엄마입니다. 요즘...^^

 

우리 집에 있는 토토로 인형이예요. 겨레가 네살 때  우리집에 온 녀석입니다. 지브리 정품은 아닌 길거리 상표인데요. 토토로 인형을 보자마자 겨레가 펄쩍 뛰며 좋아해서 데리고 왔었죠.

 

 겨레가 '내일'에 대한 개념이 있는지를 알려준 고양이 버스 인형입니다.

이건 지브리 정식 매장에서 가격이 너무 비싸길래 "내일 사줄께...."라고 말하고 그냥 왔는데, 겨레가 아침에 깨자마자 " 내일이다. 고양이 버스 사러가자!"라고 해서 겨레에게 내일이란 개념이 생긴 줄 알았었죠. 네살 때였어요. 내일 고양이버스입니다.^^

 

 이건 지인이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에 갔다가 겨레에게 기념품으로 사다주신 핸드폰 고리예요.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버스, 숯검댕이, 토토로가 모두 매달려있답니다. 이거 달고 가면 겨레 친구들이 난리가 난다고 해요.^^ 그래서 겨레가 아끼고 아껴서 일년에 며칠 안달고 다니는 귀중한 보물이죠.^^

 

 2003년1월 28일이니까, 우리 딸 여섯살 된지 며칠 안된 날이네요.(네돌 반도 안되었을때죠^^) 이것도 토토로 매장에 놀러갔다가 토토로 찍힌 우산을 보고, 졸라서 사준 우산이랍니다. 토토로가 비 올 때 쓰고 있는 우산이죠...

겨레가 우산이 쓰고 싶어 눈오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빨간 코트를 입고 애니메이션 속 메이만했던 우리딸이 신나게 종종거리고 다녔던 기억이 어제일 같네요.^^

 

 

 빠르게 변화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그간 잊거나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따뜻한 인간애와 젊고 파괴되지 않은 시골 풍경이 그려진 자연의 포근함과 싱그러움이 온몸으로 느껴졌던 밤이었습니다.

 

 

 

2010.9.6

겨레는 열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