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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생명과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림책 '꽃그늘 환한물'

by GoodMom 2010. 5. 20.

꽃그늘 환한 물    정채봉 글  김세현 그림/ 길벗 어린이


요즘 아이들 말로 '헐!'이라는 한 단어로 다가왔던 그림책입니다.

어린이 도서관 그림책 코너에서 이런 저런 눈에 띄는 그림책을 꺼내보다 만난 '꽃그늘 환한물' 이라는 그림책은 고운 노란 꽃빛 때문에  한눈에 이끌렸던 책입니다. 작가도 보지 않고 출판사도 보지 않고 그림책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그림 먼저 보았어요.

도서전에 가면서도 생각했던 이야기지만, 와...우리나라 그림책도 정말 좋아졌구나라는 생각...(한동안 집에 있는 그림책 외에는 안봤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나봅니다.)

예전 습관처럼 텍스트는 접어두고 그림만을 한장 한장 살펴보며 내용을 상상해 보았지요. 마지막장까지 넘어가며 감탄에 감탄을 하고 다시 겉표지로 돌아와 작가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정채봉 선생님이 쓴 글입니다. 글 내용이 궁금해져 다시 찬찬히 글을 음미하며 책장을 넘겨보았습니다.

 

깊은 산 속 외딴 암자에는 눈이 크고 키가 큰 스님이 홀로 불공을 드리며, 나무도 하고 공부도 하고 개울가에 나와 빨래도 하며 살고 계십니다.  스님이 안계신 사이 잘 닦아 놓은 마루에 발자국을 남기고 간 새발자국을 보고 어느 새가 왔다갔는지 짐작하시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이 많이 내린 어느 추운 겨울날엔 갈무리 해 둔 무를 배고픈 산짐승들에게 슬며시 내어주기도 합니다. 낙엽이 쌓여 길을 덮은 어느 늦가을 날엔 개울 한귀퉁이 이끼 낀 돌을 발견하고 이끼가 얼어죽지 않도록 스님이 거쳐하는 암자의 방으로 이끼낀 돌을 가지고 왔다가 봄이 되어 다시 제자리로 내어다 주시는 스님,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시는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림책을 모두 읽고나자, 스토리가 아른아른 거려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들었는데...들었는데...하면서 가만가만 생각을 떠올려보니, 오세암이라는 동화책이 생각 나더군요. 겨레가 저학년 때 한참 오세암에 빠져있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 같이 단편으로 실려있던 이야기가 어렴풋이 떠올라 찾아보니, 그 책에 '꽃그늘 환한 물'이 실려있는 것이 맞았습니다.

오세암이 준 감동이 워낙 강했던 탓이라 이 글은 좀 밀려있었는데, 그림과 함께 다시 태어난 이 책을 만나니 정말 색다른 감동이 다시 밀려오더군요.

“흰구름이 이야기하였습니다.”라는 문장으로 그림책이 시작되는데요. 그림책의 그림들을 한장 한장 살펴보면, 모든 그림이 흰구름의 시각에서 그려졌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표지그림도 스님 뒷모습을 내려다 보는 흰구름의 시각이예요.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그림과 과감한 색감,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한 그림이 글의 여운을 한층 더해줍니다.

아, 이 책에 나오는 스님...혹시 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냥 그림책에 나오는 스님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정채봉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 보니 이 책은 '법정스님'의 삶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네요.
 
동화를 읽고 일러스트를 그리기 위해 김세현작가는 법정스님이 거주하셨던 송광사 불일암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고민과 생각 속에서 한지 위에 전각과 민화 방식으로 탄생 시킨 그림과 그림에 어울리게 알맞게 나누어진 텍스트는 소박하지만 생명존중의 사명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가신 법정스님의 삶의 모습을 더욱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네요....

전체적인 주제인 '거룩한 생명사랑'을 담아내기 위해 한장 한장 고민하면서 동화를 그림책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작가의 고민의 흔적을 옅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이 됩니다.  

아, 마지막 페이지의 김세현 작가가 직접 붓으로 쓴 작가의 말...은 몰래 숨켜 놓은 편지처럼 반짝 미소를 머금을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책의 보너스라 생각이 됩니다.(놓치지 말고 꼭 보세요!) 그 붓글씨가 그림처럼 멋져서, 또 저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서예 배울까?라고...^^)

 

 

본문으로 잠깐 돌아가 볼게요...

스님은 개울의 한쪽 귀퉁이에서 파란 융단 같은 이끼를 쓰고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드시는 것이었어. 그러곤 이웃한테, 마치 사람들에게 이르시듯 조용조용히 말씀하셨지.

“올해는 무 껍질이 두터운 걸로 봐서 동장군이 제법 기승을 부릴 것 같으이. 그렇게 되면 이 이끼도 얼어 죽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묵고 있는 거처로 데려가려고 하네. 이해들 해 주겠지. 그렇다면 서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게나.”

라는 말씀을 남기고 이끼낀 돌을 들고 가십니다. 
암자에 돌아오셔서는 조용히 이끼 낀 돌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처음은 좀 낯이 설어서 서먹서먹할지 모르지만 이내 서로 정이 들 걸세. 저건 차를 끓이는 주전자이고 저건 찻잔일세.”

'존재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하시는 스님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정채봉 선생님과 법정스님의 인연은 정채봉 선생님이 만들던 '샘터'라는 잡지에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오랜시간 연재글을 실어주시며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채봉선생님은 간암으로 2001년 사망하셨는데 얼마전, 법정스님이 정채봉선생님을 기리며 쓴 친필원고를 샘터사에서 공개하기도 했는데, 그 글을 읽어보니 두분의 각별한 인연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 법정스님 친필 원고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를 보실 분은 click )

 

동화 '꽃그늘 환한 물'은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집인'오세암'과 '꽃그늘 환한 물' 두권 모두에 실려 있습니다.

동화책 '오세암과 꽃그늘 환한 물 '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를 모은 동화책'오세암' (정채봉 지음/이현미그림/창비)에는  오세암과 꽃그늘 환한물 포함 22편의 동화가 실려있어요. 

동화책'꽃그늘 환한물' (정채봉 지음/오정택 그림/샘터) 꽃그늘 환한물 포함 열여섯편의 작품을 모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림책 '꽃그늘 환한물'이 왜 흰구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풀어지는지를 알 수 있답니다.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부처님 오신날이면 연등 보러 절에 가고, 또 크리스마스 되면 명동성당 도 찾고 그래요. 우리딸 겨레에게는 '엄마는 내 마음의 선(善)을 따라 사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하구요.

어린시절 할머니를 따라, 엄마 따라 절에 다니긴 했지만, 종교적인 믿음이라기 보다는, 그 날의 연등 풍경이 좋아서, 혹은 절밥이 맛있어서,집에 있는 것보다는 재밌을 것 같아서...뭐 이런 이유였던 것 같네요.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론'이나 '인연론'은 믿어요. '60억 인구 중에 너를 만났다는 건...'이런 생각하면 인연 하나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내 행동 하나하나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얼마 전 법정스님이 쓰신 '무소유'를 다시 읽었는데, 거기 종교에 관한 좋은 문구가 있더군요.

 

종교는 하나에 이르는 개별적인 길이다. 같은 목적에 이르는 길이라면 따로따로 길을 간다고 해서 조금도 허물 될 것은 없다. 사실 종교는 인간의 수만큼 많을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특유의 사고와 취미와 행동향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이 보다 지혜롭고 자비스럽게 살기위해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길'이다.

                                                                                                  - 무소유 중에서-

 


예전에 절에서 찍은 재밌는 사진 두장 한번 보실래요?

 

 

 

2007.9.8 고창 선운사에서...

댓돌 아래 놓은 스님 신이 눈에 띈다.

소박한 신에

화이트로 ' ^_ ^'  '♡' 무늬를 넣어 튜닝을 하셨다고

겨레랑 웃었다.

 



 




 

 

 2008.5.26

불국사 극락전 앞

두손 모아 합장하고 돌아서는데

겨레가 내 팔을 툭 치며 가리키는 것이 있어 보니,

스님 고무신이다.

선운사 스님 신에도 요런 재밌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누가 그린걸까?

웃음이 난다.

 



 

2010.5.20

겨레는 열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