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보면 하루가 그냥 후다닥 빛의 속도로 사라져 버린다.
그 허탈감도 허탈감이지만 그렇게 뒹굴고 나면 온 몸은 더 쑤시고 힘든 것 같아,
주말엔 좀 바지런히 움직여 어디라도 바람을 쐬고 오자고 약속...
이번 주에는 지난 봄 성곽길 코스 돌다 나온 창의문에서 시작해 인왕산을 오를 계획...!
집앞에서 버스를 20여분이나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 결국 택시를 탔다.
택시비 아껴서 맛있는거 사먹자고...그리 약속했건만...(나중에 알고보니, 그 버스가 30분에 한대씩 오는 버스라고, 10분만 더 기다려봤음 좋았을 것을...)
지난 봄, 성곽길 코스를 돌다 발견한 보물같은 동네,
노후에 살고싶다는 소망까지 가지고 있는 부암동...
만두집 천진포자, 명물 치킨집 치어스, 그리고 무엇보다 자주 애용하는 떡집 동양방앗간
단골집이 세곳이나 된다.^^
주문하고 15분 기다리면 나오는 치킨가게 치어스...
통감자와 함께 들어있는 치킨이, 굉장히 맛있는집...
겨레가 좋아하는 치킨집인데...요즘 다이어트 한다고 절대 입에도 안댄다...ㅠㅠ
작년에 우연히 지나치다 떡을 샀던 동양방앗간 떡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집.
여기 떡 중에서 찹쌀떡이 가장 맛있는데 아침 출근시간 지나면 다 떨어져서 먹기가 쉽지 않다.
이 날도 11시쯤 갔는데 이미 찹쌀떡은 다 떨어지고 없어 인절미랑 가래떡만 샀다.
동양방앗간에서 떡을 사고 창의문 지나...
인왕산 등산로로 들어선다.
이름이 근사한 '윤동주 시인의 언덕 오르는 길...'을 향해!
이곳 근처에 허름하게 만들어진 윤동주 문학 전시관이 있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인왕산 자락에 조성한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온다.
봄 소풍 나온 한무리의 학생들이 봄 햇살 아래 즐겁게 봄소풍을 즐기고 있는 중...!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새겨진 기념바위...
산을 돌아 빙 두르는 길이...한적해서 이쁘다.
겨레아빠가 인왕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사직공원 방향으로 내려와 맛있는걸 먹자고 해서,
그렇게 알고 열심히 뒤를 따라갔는데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저렇게 두번씩이나 커다랗게 '정상→사직공원 방향등산로 폐쇄'라고 써있었는데,
우리 세사람 모두 무얼 보고 올라갔는지...
눈 뜬 장님들이네...^^
날씨가 쌀쌀할것 같다고 바람막이 점퍼를 하나 더 챙기겠다고 할 때부터 ...
가져가봐야 짐만 될 뿐이라면서 어쩜 그렇게 추위를 타느냐고 혼자 구박을 다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챙긴 바람막이 점퍼!)
흐흐...산 초입에서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 입는데 추운지 겨레 입술이 시퍼렇다.
나도 추웠지만, 어찌 입술 시퍼런 딸을 두고 내가 입을 수 있을까,
겨레에게 바람막이 점퍼를 양보했는데, 엄청 추웠는지 두말않고 껴입더라는...
^^
밖에 나가면 맛있는거 사줄 생각으로 가득찬 겨레아빠...
과연 사직공원 아래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더디게 오긴 했지만 봄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인왕산을 오르며...
끝도 없이 이어지고 이어진 인왕산 성곽길...
언제 다 오르나 싶지만 그래도 묵묵히 오르다 보면 금방금방 저 멀리 보이던 풍경이 눈 앞에 다가와 있다.
산에서의 돌계단은... 반갑지가 않다.
성곽코스길로 따라가는 길 내내 이런 돌계단...ㅠㅠ
그리고 이곳도 곳곳에 군인 초소...
경복궁과 청와대 방향으로는 사진 촬영 금지
인왕산 정상이 가까이 보인다.
하나의 거대한 바위덩어리 산이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떠오르는 풍경!
정선의 인왕제색도...
인왕산 정상의 바위산을 직접 보고 나니, 그림에서 현실감이 느껴진다.
겨레랑 다녀와서 이 그림을 다시 찾아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선은 그 전까지 중국의 산수화를 모방해서 그렸던 화풍에서 탈피해
비온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모습을 직접 보고 그렸다고 한다.
너무 열심히 오르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이렇게 거대한 안내판도 못보고 지나친 우리 세사람!!!
큰 바위를 돌고 돌아 좁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겨레가 산에 가는거 이제 장난 아냐...나는 힘들어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라고 얼마 전 말했더니
겨레아빠,
"이제 겨레가 힘들다고 말할 정도면 우린 초죽음 상태가 되어있을걸...!!!"
^^
발아래가 아찔아찔하다.
"저 표지판 그림 무섭다..."라며
저렇게 작은 표지판은 잘만 보고 올라갔는데...^^
"남산타워가 우리보다 한참 아래 있네..."하면서 잠시 한숨을 돌리며 쉬어간다.
정상 바위 위쪽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내려오고 있으셔서 인사를 나누니
정상 올라가면 바람이 차갑다고 하시면서 조심해서 올라가라 하신다.
"정상이 코 앞이네..." 즐거워 하며 마지막 힘을 냈던 곳
우리가 쉬어갔던 그 자리에도 이렇게 떡 하니 붙어있었던 안내문구...
'사직공원 방향 등산로 폐쇄'
^^
하지만 우린 이 때도 사직공원으로 내려갈 집념만으로 힘을 내 정상으로 올랐다는...
정상 마지막 부분에는
성곽 보수정비공사에 필요한 자재 운반용 모노레일을 설치 중이라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맨 바위를 오르느라 겨레가 진땀을 흘리는 중!
인왕산 정상에서...
그리고 그제서야 눈에 제대로 들어 온, 사직공원 방향 등산로 폐쇄 안내문...
후들거리는 다리를 안고 다시 내려가는 길...
오던 길 어디쯤으로 돌아 내려 가야 하나 고민이 많은 겨레아빠...^^
아니 정상에 그런 안내판을 두면 어떻하냐고 투덜대면서 내려오다 보니
그제서야 길 곳곳에 놓인 안내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 아까는 왜 못 봤지?"
셋 다 오직 사직공원 방향에 눈 멀었던 모양이지...
그 두사람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내 그림자...!
(오늘 내가 겹겹히 껴입은 등산복장이 맘에 안든다고 투덜댔던 겨레아빠... 내 사진을 한컷도 안찍어 주었다지.)
우리가 내려가려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이쪽 코스로 내려가면서 보게 된 절경...
정말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풍경의 한자락이었다.
폐쇄된 사직공원 방향 따위 잊어버릴 만큼
우리에겐 큰 선물이었다...^^
커다란 바위산 인왕산 자락, 바람 때문에 날려간 누군가의 모자, 스카프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함께 바라본 추억...
모두 함께 갔지만 모두 함께 커다란 안내판을 제대로 보지 못한 추억...
^^
산을 절반 이상 내려와서 나누어 먹은 동양방앗간 인절미의 기가 막힌 맛!
겨레 말대로 오붓하니 맛있었다!
겨레와 나는 산다람쥐들처럼 오물오물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 하고 떠들었다는...
이번 봄...새로 장만한 겨레와 아빠의 커플 등산화...
겨레말론 산에서 등산화가 착착 붙더란다.
낡은 등산화를 신고 산에만 가면 내려오는 길에 벌벌 떨던 겨레가
새등산화 신고 훨훨 날아서 내려왔다...오늘은...
재잘재잘 떠들기까지 하면서...
홍제동 어느 아파트 뒤쪽 길로 내려와서...
전철역으로 들어섰다.
사직공원 방향으로 나와서 효자동쪽으로 가서 맛있는 걸 사줄 계획이었다는 겨레아빠의 처음 의지대로,
전철을 타고 이동해...
결국은 효자동으로...향했다는!
여행,
불확실성이라는 것 때문에 돌아보면 더욱 즐거운 것 아닌가!
혜화문에서 창의문까지 서울 성곽길 이야기는...
2012.
겨레는 열다섯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