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겨레 읽을 책 고르느라 책과 가깝게 지내긴 했지만 올해처럼 '내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많이 들여본 적은 없었어요. 올 한해 시간에 쫓기면서 오히려 더 많은 책을 짬짬이 집중도 있게 읽었고, 그 속에 푹 침잠해 볼 수 있었던...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겨레에게 올해 읽은 책들 중 열권만 뽑아 보라 하면서 저도 열권을 뽑아보았는데요. 한해동안 읽은 책목록들이 저마다 "나도 재밌었다고 했잖아!"하고 외치는 것 같아 괴롭기도 했답니다...^^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 김영사
올해의 책 열권을 뽑으면서 단연코 가장 위에 놓고 싶은 책...내 인생의 책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행복해고 열정이 들끓었고, 놀라웠던 책이 아니었나 말하고 싶은 책이예요. 겨레 생일 선물로 겨레아빠가 겨레에게 선물해 준 책인데, 제가 들고 서고 잠도 줄여가면서 읽으면서도 한장 한장 아까워 하며 읽었던 책이랍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시베리아호랑이(한국호랑이라고도 하죠)의 발자취를 쫓아 산맥을 넘고 잠복을 하면서 영상으로 담은 EBS 다큐멘터리 ‘시베리아호랑이-3代 의 죽음’을 글로 엮은 책입니다.
저자는 세계에서 한시간도 기록되지 않은 시베리아 호랑이를 담기 위해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는데요. 책에서는 블러디메리라는 암호랑이 가족 3대를 관찰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허구가 아닌 진실을 담은 책이라 '영화보다 극적이고 소설보다 경이로운 불멸의 대서사시'란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하루 이십페이지씩을 목표로 하고 읽기 시작했던 책인데, 어느순간부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 책을 잡고 앉아있는 저를 발견하곤 했네요...
-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자신을 사회화 하지 않으면 이끼가 낀다. 하지만 구르는 돌은 닳게 마련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끔은 이끼 낀 돌이 되어야 한다. 구르지 않고 한곳에 머무르며 자기 내부로 침잠해 보는 것, 이런 시간이 없다면 인생이란 숲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비트는 호랑이를 보기 위한 곳이지만 자신을 보는 곳이기도 하다. 비트를 체험해 보라. 그곳에서 이낀 낀 돌이 되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보라.
- 잠복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해 준다. 잠복은 고개를 들어 유일한 인생의 저 끝을 보게 한다. 그래서 범신론자가 되고 정령주의자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힘든 병을 앓거나 죽음이 다가오면 다들 느낀다. 무엇이 중요했고 무엇이 사소했는지를. 잠복은 인생을 마감할 때 느끼는 것들을 미리 느끼게 한다. 삶이 아직 남아있을 때 그 느낀 바를 실천하게 한다.
- 자식교육을 시키는 엄마로서의 호랑이를 표현한 글: 실제적인 사냥 훈련은 큰 동물을 사냥하게 된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 시기에 커다란 멧돼지나 곰같이 위험한 동물을 얕보고 생각없이 덤비다가 큰코 다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것은 어미도 가르쳐 줄 수 없다. 스스로 경험하고 상처받으며 터득해가야 한다. 홀로 경험을 쌓으며 어미를 따라다니는 반독립 상태가 1년 남짓 더 진행된 후, 마침내 홀로서기에 나선다. 어미는 평소에는 자상하지만 교육시킬 때는 아주 엄해진다.
-산다는 것은 달고 쓰고 맵고 신 자연의 순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음미하는 세월이다. 그리고 그렇게 순환하는 자연의 맛을 오랫동안 같이 음미하는 존재가 가족이다.
개미 베르나르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겨레아빤 저와 겨레에게 책 선물을 자주해요. 아빠의 선물로 저희집에 들어온 책들은 온가족이 함께 경쟁하면서 읽곤하는데, 같은 책을 읽으면서 하는 가족끼리의 속도 경쟁도 재밌지만(속도에서는 겨레아빠를 따라가지 못하네요.그 다음 겨레>그리고 저 순서입니다.^^ )
책에 빠져 두고두고 가족끼리 내용을 돌아가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가족이 함께 책읽는 기쁨 중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요...물론 책내용을 이야기 한다고 해서 심각하게 책을 두고 토론(?)하는 모습, 아니예요. 저녁 먹는 자리에서, 그저 재미로 이런 저런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고 웃고 나누고, 서로에게 최근에 읽은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이런 글귀가 좋았다. 이런 부분이 좋더라 자연스럽게 얘길 나누는 것이랍니다. 겨레가 자라 우리와 비슷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이런 자리가 더 자연스러워 졌구요. 이것이 홈스쿨링 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눈 뜨면 학교가고, 돌아오면 학원으로 내달리는 생활을 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이런 일이 너무 좋아서 홈스쿨링 한 이후로는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살았어요. 밤 늦도록 편안하게 저녁 식사 자리에서 웃고 얘기 하는 일이 너무 즐겁거든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워낙 유명한 책이라 아시는 분들도 많고 읽으신 분들도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존과 투쟁이 담긴 개미의 세계를 개미의 시각을 통해 그려낸 책입니다. 이 책은 작품 집필에만 12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놀라운 개미의 세계를 너무도 치밀하게 잘 그려냈다는 생각을 읽는내내 했답니다.
"이 책을 읽고는 생명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산에 갈 때, 길 걸을 때 발밑이 너무 신경 쓰여." 겨레가 그러네요.^^
- 모든 것은 접전을 벌이기 전에 결정이 나버리는 것이다. 위턱으로 공격을 하거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
- 하루살이의 천적은 <시간>이다. 1초 1초가 하루살이의 적이다. 거미가 무섭다 해도 <시간> 그 자체에 비하면, 단지 시간을 잠복시키는 요인일 뿐 온전한 의미에서의 적은 아니다.
바리데기 황석영지음/창비
북한을 탈출해 영국까지 건너가며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해 가는 바리의 일대기를 담은 이책은 탈북여성 바리의 '이동'을 통해 전쟁의 아픔과 이데올로기, 종교와 민속, 인종, 이승과 저승, 빈부차이까지 담아내고 있고 전체적인 틀 속에 우리의 토속신앙 '바리공주'이야기를 함께 풀어냈습니다. 문장하나 하나 너무 좋아 음미하고 음미하면서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용서와 화해의 길, 사랑이 세상을 이끄는 가장 큰 이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주었던 책입니다.
- 신은 우리를 가만히 지켜 보시는 게 그 본성이다. 색도 모양도 웃음도 눈물도 잠도 망각도 시작도 끝도 없지만 어느곳에나 있다. 불행과 고통은 모두 우리가 이미 저지른 것들이 나타나는 거야.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이겨내야 하고 마땅히 생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그게 신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거란다.
- 육신을 가진 자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지상에서 이미 지옥을 겪는 거란다. 미움은 바로 자기가 지은 지옥이다. 신은 우리가 스스로 풀려나서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를 잠자코 기다린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몇년 전 겨레아빠가 '향수'라는 독특한 영화를 봤다면서 줄거리를 얘기해 준 적이 있었어요. 겨레랑 재밌게 영화 얘길 들었는데, 나중에 그 영화가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보니 제가 재밌게 읽었던 '좀머씨 이야기'를 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연결고리를 찾게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예요.)
지독한 악취가 나는 생선 시장에서 태어나 버림을 받은 천재적 후각을 가진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어느날 처음 맡아본 여인의 향기에 끌리게 되면서, 그 향기를 영원히 소유하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한물간 향수제조업자에게 향수 제조방법을 배우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향수...는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신비하고 독특한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을 다 읽은 후, 영화로도 본 향수...
소설도 파격적이지만 영화로도 너무나 잘 풀어간 향수는 전율이었습니다. 주인공 그루누이의 첫번째 향수 제조 스승인 주세페 발디니의 역할을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도 좋았고, 책 속 주인공이 마치 살아나왔다고 생각되었을 만큼 몰입도 깊은 연기를 한 그루누이 역할의 벤위쇼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보통 책을 재밌게 읽고난 후, 영화를 보면 둘 중 하나가 아쉽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인데, 이 이야기는 책도 영화도 모두 신비하고 좋았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황성식 옮김/인디북
어린시절 방학이면 이런저런 문고판 책을 읽곤 했는데, 그 때 읽었던 명작들...사실 당시엔 그리 깊은 감동도 없이 읽은 기억만 남아있는 책을 이 나이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어떤 날은 그 울림이 너무 절절해 며칠동안 그 생각에만 빠져 살았던 적도 있었답니다(겨레아빠, '우리 선주가 또 책 한권을 읽었구나!'라고 할정도로...^^) '그 나이때는 왜 잘 몰랐을까? 이렇게 좋은 것을...' 생각도 여러번 했었어요. 위대한 개츠비도 그런 책 중 한권이었지요...너무나 좋아 한번 읽고, 연이어 다시 한번 또 읽었던 책 위대한 개츠비...
전쟁터에 나간 가난한 자신을 두고 결혼해 버린 연인 데이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이용해 부를 축적한 개츠비...데이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매일 밤 성대한 파티를 열지만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마는 개츠비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삶에서 소중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겨레는 이 책을 '불륜'에 촛점을 맞추었더라구요.^^ 그 얘길 듣고 아직 어리구나 싶었습니다...하지만 겨레도 두번이나 읽었으니, 훗날 제 나이가 되어 또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저처럼 그 때는 왜 몰랐을까라고 생각할 날이 있겠지요...^^
헬프1,2 캐스린 스토킷 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1960년대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 잭슨이란 마을에서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 가정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백인 여성 스키터와 그녀를 돕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는 흑인여성 아이빌린과 미니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소설입니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에게는 병균이 옮는다면서 화장실마저 따로 쓰게 하면서,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를 하는 부유한 백인 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우리도 모르게 이런 아이러니한 일들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었어요. 이이빌린과 미니, 스키터의 목소리로 세명이 번갈아 가며 들려주는 형식도 색달랐구요. 이름 모를 누군가가 조금씩 퍼낸 한삽 한삽이 큰 고랑을 만들고 물줄기를 흐르게 만드는 것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데는 작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힘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책입니다.
지난 11월 이 소설이 영화로 개봉을 해서, 이 책을 재밌게 읽었던 저희 가족은 심야영화로 보고 왔답니다. (저흰 심야영화를 좋아해요. "영화는 심야영화가 제맛이지!"라는 겨레의 철학, 영화가 다 끝나고 보니 새벽 3시반이었지요.^^) 소설이 워낙 재밌어서 그랬는지, 영화는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었어요.
남한산성 김훈 지음/ 학고재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에 쫓겨 무기력하게 남한산성에 갇혀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인조의 이야기를 다룬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민초들이 겪는 고된 삶과 전쟁의 이야기가 작가 김훈작가의 손끝에서 냉혹하고 객관적 시각으로 씌여진 소설입니다.
김훈 특유의 무미건조하고 간결, 압축적인 문장은 칼날처럼 차가운 겨울을 남한산성에 갇혀 오직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면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지도층과 민초의 삶을 어찌나 차갑게 그려냈던지...책을 읽으면서 함께 추위에 떨었습니다.
지난 겨울 겨레와 산책 나갔다가 보았던, 삼전도비...가 생각 났습니다.
롯데월드...가 보이는 석촌호수를 따라 걸어가면... 그 길 끝에...
병자호란에서 승리한 청나라 태종의 요구로 세워진 일명 삼전도 비가 있습니다. 비석 앞면은 만주 글자와 몽골 글자로, 뒷면은 한자로 세겨졌는데 청나라에 항복한 경위와 청 태종의 침략행위를 찬미한 내용이 써있습니다. 청일 전쟁 이후, 청의 세력이 약해졌을 때 이 비를 강물 속으로 쓰러뜨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웠졌다 1956년에 다시 묻었다가 1963년 홍수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다시 세웠다고 해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현대문학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집입니다. 곳곳 삶을 깊이있는 성찰과 깨달음으로 이야기 해주는 책이었어요. 작가로서, 평탄하지 않은 격동의 세월을 살다간 한 여인으로서의 삶이 잘 정리된 책 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운 문체, 아름다운 글귀, 마음에 와닿고 공감가는 글이 많았던 에세이집이었습니다.
- 내가 꿈꾸는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세종서적
오랜 시간을 치매로 고생을 하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삶과 죽음은 저에게 큰 과제와도 같은 것이었어요.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견해가 돋보였던 책이었습니다.
조금씩 온 몸이 마비가 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루게릭 병에 걸린 모리 교수님은 화요일마다 자신을 찾아 와 주는 제자 미치 앨봄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둘이 나눈 이야기에서 인생의 깨달음을 전달해 주고 가는 스승 모리 교수님.
- 난, 나이 드는 것을 껴안는다네.
간단해.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우지.22살에 머물러 있다면 22살만큼 무지할거야.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야.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구.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어.
-의미있는 삶을 찾기 위해
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바쳐라
② 자기를 둘러싼 지역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③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자신을 바쳐라
-너무 빨리 떠나지 말라, 하지만 너무 늦도록 매달려 있지도 말라.
-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 끝이 가까울수록 그는 몸을 단순한 껍질로, 영혼이 담긴 그릇으로 보았다. 몸은 쓸모 없은 살갗과 뼈로 시들어 갔고, 그래서 그것을 벗기가 훨씬 수월해 졌다.
-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네.
해변의 카프카1,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1Q84를 통해서였습니다. 1,2편이 먼저 출간되어 남편과 경쟁하듯 읽었고, 6개월 후쯤 3편이 나왔을 때는 서점에서 다 읽고 와버렸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어요. 이 후, 하루키의 작품을 찾아 '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단편 '빵가게 재습격','스푸트니크의 연인'까지 모두 재밌게 읽었어요. 같은 작가의 책이라도 찾아 읽다 보면 살짝 실망스러울 때도 있는데 올해 읽은 '해변의 카프카' 까지 모두 재밌었네요.
하루키의 책은 뭐랄까요. 책을 읽을 때 살짝 멍해지는 느낌이 좋아요.(저만 그런건지...)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 속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아 할일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멍해지는 느낌.
15살 소년이 가출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그곳에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예요.(많은 부분이 담겼지만 전체적인 줄거라는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15세는 어린아이의 끝이며 어른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가장 순수하고 변형이 안된 인간의 원형으로 보았다고 하네요. 해변의 카프카...책의 주인공이 다무라 카프카예요.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에서 가져온 이 이름은 공허와 부조리 악몽같음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 나도 열다섯 살 무렵에는 어딘가 다른 세계에 가고 싶어했지. 어느 누구의 손도 미치지 않는 곳으로. 시간의 흐름이 없는 곳으로. 나도 열다섯 살 때에는 그런 장소가 세계의 어딘가에 꼭 일을 것으로 생각 했거든. 그런 다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를,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 우리들이 모두 멸망하고 상실되어 가는 것은, 세계의 구조 자체가 멸망과 상실의 터전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지. 우리의 존재는 그 원리의 그림자 놀이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
도서관에 예약해 놓은 해변의 카프카가 차례가 되었다 해서 찾아와보니 이렇게 상처를 많이 받은 책...ㅠㅠ 게다 얼룩까지 너무 심해서 손을 대기도 찝찝해 책을 읽어야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답니다. 하지만 한장만 읽으면 빨려들어갈 듯 재밌는 하루키의 소설들은 결국 책 장 덮을 때마다 손을 씻게 하더라도 읽고 말게 만들 정도로 재밌었어요. 집에 책 제본에 쓰는 본드가 있어 대대적으로 손질을 해서 읽고 반납을 했습니다.
여럿이 읽는 책이니 조금씩 손상이 가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렇게 뭔가를 심하게 쏟았다면, 슬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 깨끗한 책으로 배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었어요.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창비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 지하철 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면서 실종이되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엄마가 실종 되고서야 엄마와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 가는 가족들의 독백같은 이야기를 통해 늘 풍경처럼 그자리에 있었던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이 세상에 엄마가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은 일인것 같아."라며 겨레에게 저녁을 먹다 말고 울부짖었던 책 '엄마를 부탁해' , 그 얘기를 듣고 '엄마 없은 세상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내 어깨를 두드리며 같이 목놓아 울었던 겨레...
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며 저녁 뉴스에 소개되어 우리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파란눈의 외국인 할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네요.
친정집으로 돌아간 엄마 영혼의 독백...이 마음에 남습니다.
- 저기,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있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위안부리포트 1- 나는 고발한다 정경아 글 그림/ 길찾기
손을 덜덜 떨면서 읽었던 책입니다.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로 착취당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과거와 현재를 만화로 펼친 책입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위안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와 우리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만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용어문제...'위안부'라는 말을 피해자들이 거부를 표명하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1993년 10월 일본에서 열린 2차 아시아 연대 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쓰게 되었다고 해요.
1.강제성과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앞에 '일본군'을 반드시 붙인다.-종군은 스스로 일본군을 따라다녔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종군 위안부'란 말은 쓰지 않는다.
2. 또한 역사적 용어임을 강조하기 위해 '위안부'에 만드시 작은 따옴표를 붙인다.
<일본군 '위안부' > 영어로는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라고 하는데요. 피해자들이 처했던 상황을 더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은 영어표현이라 사실 '일본군 성노예'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시위때 피켓에 'Comfort women'이란 표현도 보았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간 이 불편한 진실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먹먹해지는 날도 많았는데, 후대의 우리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보아야 할머니들 이후 다음 세대에게도 바른 진실과 역사를 가르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권을 뽑는다 해놓고는 쓰고보니 열두권입니다.^^ 두권을 지울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올리기로 했어요.
한해동안 겨레네 집을 통해서 소중한 인연 이어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2011.12.31
겨레는 열네살(우리 딸 이제 내일부터 열다섯살이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