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겨울 헌책방
겨레 4학년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서울 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관람하고, 낙성대 보고...추운 날 발을 동동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연히 길에서 만난 헌책방...
헌책방에 들어가 추위에 언 몸도 녹이고, 한참동안 책 구경을 한 적이 있었어요.
겨레는 이 때 처음 헌책방에 가본건데, 새책을 파는 서점과는 다른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고 하더군요.나름 어린이 잡지며 책을 찾아 신기해 하며 한참을 서점에 머물렀었는데요. 그 때 겨레가 즐겨보던 위즈키즈 잡지 10년전 발간 된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얼마나 신기해 했던지...
이것 저것 사고픈 걸 다 사고도 몇 천원 밖에 안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로 일부러 헌책방을 몇 곳 찾았었답니다. 신촌에 있던 헌책방 '숨어있는 책'은 정말 숨어있어서 찾기 힘들었지만, 찾아간 보람이 있었을 정도로 따스한 기운이 좋았던 곳이예요.
비좁은 공간 한 곳, 빈 의자가 하나 남아 겨레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헌책방 삼매경에 빠졌다 돌아왔습니다. 나올 때는 맘에 드는 책을 몇 권 골랐는데, 한권에 천원 이천원이었던 분위기에, 엄마는 신이 났었죠...
벌써 2년 전의 일이네요...
숨어있는 책, 지금도 신촌 그 자리에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헌책방 하면,
낡은 책에서 풍겨오는 책 내음, 비좁은 공간...알뜰한 가격...
웬지 그 좁은 공간에서 헌책을 척척 찾아내 주시는 주인분에게서 풍겨오는 오래된 따스함...마치 내 오랜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다락방이 떠오릅니다.
얼마전, 인터넷을 검색하다 알라딘 서점이 종로2가쪽에 헌책방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겨레를 불러서는 보여주었더니 우리딸 하는 말,
"엄마, 지난번 인사동쪽 갔다 올 때 여기 앞 지나갔었잖아. 그 때 공사중이라고 엄마가 여기 문 열면 꼭 오자고 해놓고는 잊었어?"
어????? 내가 그랬었나...(^^)
점심을 서둘러 먹고 겨레와 나갔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중고서점이란 말보다는 헌책방이 어감상 더 정답게 느껴집니다.)에 도착해서 보니, 아...기억이 나네요...^^ 겨레랑 종일 돌아다니다 지쳐서 이 앞을 지나쳤던 기억...
매장으로 내려 가는 길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 캐리커쳐가 붙어있어 겨레랑 이름 알아맞추기 놀이를 했습니다.
올 1월 타계하신 박완서 작가님
토지의 박경리 작가님
황석영 작가님
겨레랑 서점에서 실제로도 뵌 적 있는 이외수 작가님
이문열, 공지영 작가님...
지하 계단을 내려오니 넓고 환한 실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사진 오른쪽에는 계단처럼 생긴 넓은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아, 오랜시간 겨레랑 책을 골라 읽을수 있었어요...
자신이 찾는 책이 있는지(헌책방은 아무래도 그게 중요하죠.) 검색할 수 있도록 해놓은 도서검색대도 세군데나 있구요.
이미 절판된 책들도 따로 구비해 놓았고, 금방 들어온 책들도 따로 진열이 되어 있습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멋진 문구네요.
분야별로 책들이 진열 되어있고...
어린이 책 코너도 한쪽에 꽤 크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 무렵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서 큰 매장이 혼잡할 정도더군요.
겨레와는 바구니를 들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대여섯권의 책을 골라 온 후, 서점 내에서 한시간 반가량 읽고 가장 원하는 걸로 세권을 골랐습니다.
바람도 쐴 겸, 걷고 싶어져 인근 청계천 근처로 가다 호떡과 국화빵 파는 곳을 발견, 호떡 하나, 국화빵 천원어치를 샀어요. 따끈따끈한 호떡과 국화빵을 들고 청계천으로...^^
근처까지 자주 나오곤 했지만 청계천은 처음 가봤네요.
물 보고 흥분한 우리 딸, 수다를 떨면서 걷고싶어해서 몇시간을 걸었더니 이날 집에 돌아와 끙끙 앓아가면서 잠을 잤다지요.(누구? 겨레엄마요...)
겨레랑 좀 쉬고 싶어 자릴 잡고 앉았습니다.
오늘 산 책들을 담아 준 봉투입니다. 고은 시인의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네요. 겨레가 반가워 합니다.
고은시인 아저씨(?)는 어릴 적 제 고향 마을 안성에 살고 계셨어요. 그 때는 시인이 마을에 산다고만 알고 있었는데(제 친구네 옆집), 그 시인아저씨가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사실에 나중에 얼마나 놀랐던지...
"엄마 살던 동네에 고은 시인아저씨가 살았었잖아..."라면서 딸에게 잘난척을 했었답니다.
작년엔 정말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자라 해서 겨레랑 엄청난 기대를 안고 노벨문학상 발표를 기다리기도 했었지요. 아쉽게도 바르가스요사가 탔긴 했지만...지난 겨울은 고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보냈답니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오늘 알라딘 헌책방에서 구입한 세권의 책이예요. 레벌류션 no3는 재일교포인 가네시로 가즈키가 쓴 소설로 고등학생들이 세상을 향해 벌이는 모험극을 담은 성장소설이예요. 겨레가 골랐구요.
위대한 개츠비는 겨레와 제가 함께 고른 책...
작년 가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재밌게 읽었는데, 거기서 주인공의 선배가 "위대한 개츠비를 3번본사람이면 나와 친구가될수 있지" 라는 말을 해요. 개인적으로 피츠제럴드는 별로였고, 어린 시절 읽은 위대한 개츠비도 큰 기억이 없어서...지금 이 나이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헌책방에서 눈에 띄길래 구입을 했답니다.
바리데기는 황석영선생님 작품...올해 고은 시인과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기사를 읽고는 그간 황석영 선생님의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았음에 처음으로 골라본 책입니다.
책과 함께 행복할 며칠을 생각하니 가슴이 훈훈 합니다.
새것 같은 양장본 세권을 합친 가격은 12200원...^^ 너무 고마운 가격이네요.
아침을 먹고 서점에서 구입한 책삼매경에 빠져있는 겨레의 뒷모습입니다...^^ 책 읽는 모습은 언제나 대견하고 이뻐요...
새 책도 좋지만, 누군가의 책 읽는 손을 거친 헌책의 느낌은 참 특별합니다.
2011.10.28
겨레는 열네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