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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망치질 소리

by GoodMom 2015. 5. 11.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고 있을까?


콩콩콩콩콩...... 콩콩콩

망치질 소리가 시작된 것은 지난 해 늦여름부터였다. 

꽤 이른 아침부터 소심하게 시작되는 망치질 소리는 주말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여유있게 시작하고픈 주말 아침마저도 망쳐 놓는 이른 아침의 망치질 소리. 쾅쾅쾅 쳐대는 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10분 20분 지속되는 소리도 아니고, 아주 소심하게 콩콩콩 두드려대는 망치질 소리는 스무 번 정도 계속되다 20여분 쉬고 또 소심하게 두드려대다 쉬고를 반복하면서 하루 종일 지속되곤했다.

"망치질 소리 아니고 마늘 빻는 소리 아닌가?"

"누군가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사람이 이사온 모양이네. 잠깐도 아니고 매일같이 이러는거 보면......"

이 정도 선에서 관심은 그쳤다. 살다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언젠가는 멈추겠지, 못견딜 만큼 심각한 소음은 아니니까, 사람 사는 곳이 그렇지 뭐...... 이런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공동 주거 생활 공간인 아파트에 살면 서로 조금씩은 이해해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가족 생각이니까.(뾰족할 땐 뽀족하더라도 대체적으론 무난한 성격인 우리 가족...^^)

그렇게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지나가도록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간헐적으로 지속되는 잔잔한 망치질 소리는 신경이 예민한 날엔 좀 짜증이 날때도 있었지만, 덤덤하게 생각하면 견딜만한 수준이라 아파트 관리실에 연락한다는 건 생각도 못해봤고 그저 이해하는 선에서 지나가고 있었는데.......

한 번은 저녁 시간에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보니 아랫층 할머니다.

"아니, 대체 뭘하는데 이렇게 하루죙일 망치를 두드리고 그래요? 사람이 그렇게 오래 참아줬으면 이제 고만 할 때도 된거 아닌가?"하며 내게 역정을 내는 할머니 얼굴엔 잔뜩 짜증이 묻어있다.

"네?"

"이 망치 소리 말여. 금방 그쳤네. 대체 뭘하는데 그러는 거냐고?"

할머니는 다짜고짜 나를 밀치고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집은 말짱~

"베란다에서 뭘 만드는 거요?"하고 할머니가 소리를 친다.

"아~ 저 망치질 소리요? 저희 아니에요. 저흰 망치 쓴적도 없고, 쓸일도 없어요. 벽에 못 박는 것도 싫어하구요."라고 대답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우리집이라고 딱 정하고 오신듯 하다.

"아주, 우리 할아버지가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까 이제 제발 고만 좀 해요. 사람이 정도가 있어야지."하고는 눈을 흘기며 내려가 버리셨다.

쌩~

멍~

우리 집에서 들으면 분명 윗집에서 그러는 것 같았는데, 우리 아랫집에서 들으면 또 우리 집에서 그러는 걸로 들리는 모양이다. 어린아이가 있거나 가족이나 많으면 몰라도 대부분의 이웃들이 사람이 사는지 안사는지도 모르겠다던 우리집이 이런 덤터기를 쓰게 되는 날이 오다니...... 이거 너무 억울하다 싶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마는 나의 단순함.

망치질 소리는 그 후로도 여전히 계속 되었지만 딱히 우리 집에서 취할 방법은 없었기에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간 어느 날 아침이었다. 딸아이 등교 시키려고 아침 6시 45분쯤 현관 문을 열었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 집 문 앞에 서있다 화들짝 놀라는 것이다. 문을 연 내가 놀랐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어머, 깜짝이야!"하고 보니 아파트 관리실 직원이다.

"아, 죄송합니다."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관리실 직원이 이렇게 이른 시간 왜 우리집 문 앞에 서있지?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동안 겸연쩍은 얼굴로 관리실 직원이 먼저 말을 한다. 아침부터 또 망치질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있어서 어느 집인지 확인차 나왔다고.

"저희는 아니에요. 진짜. 가족도 없고 이렇게 새벽이면 다 나가거든요."하고 설명은 했지만 엘리베이터가 금방 올라왔고 아이 등교 시간도 있고 해서 길게는 이야기를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 

'우리집은 진짜 아니다...'라는 말로는 부족한걸까? 이 직원이 며칠 후 또 찾아왔다.

문을 열어주고 확인을 해보라니 집 안 이 곳 저 곳을 꼼꼼히 살펴보고는 하는 말이 이렇다.

"실은 이 라인에서 망치 소리가 들린다고 입주민들 민원이 계속 들어왔어요. 그런데 딱 이 집하고 앞 집만 항의가 들어오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두 집 중에 한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계속 중간중간 민원 들어올 때마다 밖에서 소리를 들어보고 있었던 거예요."

엥?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지금껏 그냥 참자하고 지냈더니만 그간 앞 집과 우리 집이 의심을 받아왔다고? 지난 번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단은 젊은 관리실 직원(기껏해야 스물 네다섯 살 안팎이니 조카뻘 밖에 되지 않는다.)이 안돼보여서 시원한 음료수를 한 병 건네주면서 우리도 시끄러웠지만 너무 심한 소음은 아니라고 생각해 이제껏 참고 있었다고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더니 그 직원도 억울했던게 많은지 이야기를 술술 꺼내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부터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가 어느 집인지 몇 달 동안 잡지 못하는 바람에 화가 난 주민들한테 지금껏 얼마나 심하게 욕을 먹고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심한 사람은 관리실로 전화하자마자 다짜고짜 쌍욕부터 날리는 건 기본이고 빨리 못잡아내면 관리실 직원들 다 잘라 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한다는데, 망치 소리가 작아서 문 밖에서는 확인이 어려워 초인종을 눌러 확인하면 모든 집이 '자기는 아니라'는 답변이었다고...... 그러니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계속해서 같은 라인 위 아래층을 돌고 돌아도 잡을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 참 딱하다. 그게 여름부터 시작되었으니 그 더위에 하루에 몇 번이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을 텐데, 얼마나 덥고 짜증이 났을까?

음료수를 다 마신 직원이 돌아가면서 하는 말,

"이 집은 분명 아닌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앞 집인가봐요."하는데 어찌나 우습던지.

"아니에요. 그 집도 아닐 거에요. 그 집은 나이 많은 아저씨 혼자 사시는데 아침에 나가셨다 늦게 들어오시는 날도 많고 우리랑 3년 넘게 살면서 작은 소음도 한 번 내지 않는 점잖고 조용한 분이세요."라고 변호를 해주었건만 관리소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조용하게 혼자서 무슨 운동 같은 거 하느라 그런 소음이 날 수도 있죠. 이 집 아니니까 그 집 맞는 것 같은데."

음......

대한민국에서 말 없이 참고 살아가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 아파트 전체를 들썩이게 했던 망치질 사건은 엘리베이터에 망치질 소리 자제 벽보가 붙고, 관리실 직원들이 몇 번이나 출동하면서 복도에서 큰 소리가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작은 망치 소리에 항의라도 하듯 더 큰 망치질 소리까지 나기도 하는 둥 모두가 신경질 적으로 변해가면서 조금은 잠잠해 졌지만 여전히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톡톡톡톡톡......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그렇게 소심하게 조심스럽게 뭔가를 두드리는 걸로 보아 정말 절실한 무슨 취미나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음,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서 해야지.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그게 무슨 짓거리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 이사라는게 그리 쉬운 일인가. 이사는 쉽지 않고 망치질은 꼭 해야만 하고... 그 사람은 매일매일이 얼마나조마조마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웃곤한다. 풉~ ^^

고로,건설 회사여, 제발 아파트 좀 잘 지읍시다!


이런 웃지못할 사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