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를 며칠 앞 둔 밤, 딸이 주섬주섬 공부를 마치는 분위기길래 나도 서둘러 컴퓨터로 작업 하던 것을 끝냈다. 안 그래도 눈에서 진물이 날 것 같이 피곤해져 얼른 마무리하고 자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반가웠는데...... 그런데 책상 정리를 마친 딸이 책을 한 권 들고는 다시 자리를 잡고 앉는다.
"공부 끝낸거 아니었어? 엄마 이제 자려고 했는데..."하고 물었더니 공부 끝낸게 맞단다.
"그럼, 그건 뭐야?"하고 물었더니,30분 정도 책 읽다 자겠다는 단호한 답변. 엄마는 졸리면 자, 힘들게 왜 깨있어하는 눈빛이다.
"야, 그거 읽고 내일 학교에서 졸려서 힘들었다고 하지 말고 그냥 빨리 자, 시험이 낼모렌데 지금 책 읽게 생겼어?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누르고, 엄마스러운 품위와 교양(?)을 지키며 내가 한 말은,
"그래,너무 무리하지 말고 좀만 더 읽다가 자...아이구, 내 새끼, 어쩜 저렇게 책이 좋을까?"
ㅠㅠ
딸이 요즘 빠져있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딸의 절친 중에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있다. 저녁 먹고 야자가 시작되기 전, 운동 삼아 학교 운동장을 돌며 우연히 이 친구와 수다를 떨다보니 책 뿐 아니라 뮤지컬, 영화, 장난감(^^), 게임 등 공유하는 취미가 너무나 비슷해 깜짝 놀랐다나. 암튼 그렇게 친해진 두 아이는 서로에게 좋았던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같이 읽기도 하고, 함께 읽은 책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두 도시 이야기'도 그 친구가 소개해 준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소개해주면서 친구가 한 말도 참 이쁘고 사랑스럽다.
"근데 너 두 도시 이야기는 중간고사 끝나고 읽어. 그거 너무 재미있어서 시험공부 방해 될지도 몰라. 아니다. 그냥 읽어라. 너 시험 준비 못하게...ㅋㅋㅋ"
도서관에서 빌려다 달라는 딸내미 말에 덥석 빌려온 엄마, 그 덕에 그날 밤에도 제어를 못하고 늦게까지 '두 도시 이야기'를 읽다 잔 딸은 다음 날 1교시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오전 일과 시간 내내 스탠딩 책상에 서서 수업을 들었단다.
딸, 기력이 딸리는 것 같아 먹는 홍삼의 파워를 이런식으로 막 사용하는구나! ^^
...............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2009년 2학기 중간고사로 기억을 한다.
그 때는 시험 앞둔 날엔 어김없이 9시면 재웠다. 푹 잘 자고 좋은 컨디션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 최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개운하게 샤워까지 마치게 하고 침대에 포근하게 누운 모습 보고 뽀뽀해주고 불 끄고 나도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푹 잘 자고 일어난 아침, 아침식사 준비를 하려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거실에 불을 켜려고 보니, 거실 불이 켜있는 것이다. '어, 어제 깜빡 하고 불 안 끄고 잤나?' 하는데 거실 쇼파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딸,
"엄마..."
"어? 너, 왜 여기에 있어?"하고 물었더니 일찍 잠자리에 든 탓에 새벽 1시인가 2시에 우연히 눈을 뜨게 되었는데, 더 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거실 책꽂이에 꽂힌 다른 책을 꺼내려고 나왔다가 이런 저런 책을 보며 그냥 날밤을 샜다는 딸의 말. 그리고 막 조금씩 졸려지기 시작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엄마가 나왔다고 한다. 흐아......
암튼 그 해 중간고사는 어떻게 치뤘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힘들게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갈 무렵 머리가 아파 죽겠다라고 말했던 딸의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두통제를 먹여 보내나 마나 갈등을 하다 그냥 밥만 잘 먹여서 보낸 기억.^^
으흠, 그 사건 이후, 시험 전날 무리하게 9시에 자도록 하는 일은 없앴다는 우리집 전설...
시험이라 유난 떨지 말자! 일찍 자지말자! 평소에 자는 시간에 자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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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하고 8시까지 등교, 밤 10시 하교 덕분에 새벽-한밤 새벽-한밤의 생활을 이어가던 딸은 고2 첫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야자에 이어 심야까지 했다.('야자'가 밤 10시까지 꼭 해야만 하는 자율학습이라면 '심야'는 밤 12시까지 학교에 남아 더 공부하는 것으로 선택이다.)
심야를 며칠 하고 그 주 토요일에도 학교 독서실에 나가 공부를 하다 친구들과 점심을 해결하러 잠시 학교 근처 맥도날드에 갔단다. 10분도 안 되는 맥도날드까지 걸어 가는 길, 휘황찬란한 학교 밖 낮 풍경이 어찌나 낯설던지,눈이 휘둥그레지더라는 말.
그런데,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나누어 먹으며 보니 친구들도 자꾸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어 우스웠다고 한다. 열여덟 이팔청춘들이 이 날 맥도날드에서 한 말,
"와, 맥도날드 불빛이 원래 이렇게 화려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