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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하동 겨울 여행기(2)

by GoodMom 2012. 3. 8.


집을 떠난 곳에서의 잠자리는 낯설음 때문인지 편치 않다. 뒤척거리면서 깊은 잠을 자지못하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는데도 늘 깨던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일어났다.

창문을 열고 보니 한눈에 들어오는 하동의 지리산자락, 그리고 지리산을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숙소를 나왔다.




하동십리벚꽃길...

봄날의 벚꽃 만개한 이길이 상상이 간다...

햐~

봄날 꽃잎이 흩날리는 길도 좋겠지만, 인적없는 겨울 길도 아름다움 이상 아닌가...





벚꽃길 옆으로 녹차밭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보성에서 보았던 녹차밭보다는 규모가 작다. 규모가 작은 만큼 웬지 모를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

하동은 겨울기온이 따뜻하고 일교차가 크고 강수량이 풍부해 야생녹차도 많이 자란다고 한다.





쌍계사 입구에 주차를 하고 아침식사 할 곳을 찾았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문을 연 식당이 몇군데 있다. 눈에 띄는 집 한곳에 들러 재첩국과 비빔밥을 주문하니 몸부터 녹이라면서 따뜻한 녹차를 한잔씩 건네준다.

녹차를 마시던 겨레아빠가 "컵에도 서희와 길상이 새겨져 있네." 라고 하길래...

"서희와 길상이 누군데?" 물었더니,

"아, 뭐야? 책 소개 하는 사람이 서희랑 길상이도 몰라? 토지 주인공..."

"아, 그랬나...토지는 안읽었어. 드라마도 못봤고...모를 수도 있지...."





재첩국은 처음 먹어봤다. 뜨끈한 국물에 송송 썰어넣은 부추,

캬~~~시원한 재첩국!

"재첩국 처음 먹어봤다구? 올뱅이국이 재첩국 아냐?"하고 묻는 남편에게 이번에는 잘난척,

"올뱅이는 다슬기구, 이건 새끼손톱만한 조개야. 둘이 종류가 완전 다른거지."

^^

재첩과 참게탕이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배가 부르니, 추위도 덜하다.^^

2월의 끝자락,여전히 옷깃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매서웠지만, 부른 배를 안고 유유자적 쌍계사 입구로 향한다.




쌍계사 입구에서 어른 2500원 청소년 1000원의 요금을 내고 들어서니, 갈래길에 쌍계초등학교 입구임을 알리는 빨간 표지판에 눈길이 간다. 정감이 간다.

방학중이라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봄이 오면 아이들은 이 빨간 표지판을 지나 삼삼오오 학교로 들어가겠지...





아침을 먹은 부지런한 여행자...^^





쌍계사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까지가 일자로 이어진 독특한 구조가 독특하고 멋스럽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뜻을 가진 첫문 일주문,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는 금강문과 천왕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구층석탑 뒤 놓인 건물 팔영루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발상지라고 한다.





약수를 뿜고 있는 거북이 턱 밑에 고드름이 주렁주렁...달렸다. 하나 뗄까 하다 겨레가 눈치를 줘서 만져만 보고 말았다.

산사 경내에 우리 가족 발자국 소리만 달그락 달그락 바그작 바그작...겨울 끝자락 바람 소리 따라 가늘게 풍경소리가 은은히 울려퍼지는 아침.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단 약수터 거북이 뒤쪽으로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서있다.

무심코 서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국보 47호라고 한다. 절에 가면 이런 비석 하나 흔하게 서있지 않나 싶어 읽어보니, 신라말의 명승인 진감선사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로 '토황소격문'을 지은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것으로 이 탑은 그가 지은 4개의 비문중 하나인 사산비명의 하나라고 한다.




걸음은 조용조용, 계단을 올라서니...





쌍계사 대웅전이 우리를 맞는다.

쌍계사는 신라시대 만들어진 사찰로 진감선사대공탑비는 국보로 지정되어있고, 대웅전, 진감국사부도, 영산회상도, 삼세불도, 팔상탱화, 석가약사여래4보살 불상, 괘불도, 감로왕도,동종은 보물로 지정된 곳이다.

또한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에 처음 심으면서 우리나라 차재배가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쌍계사 입구에 차나무 시배지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대웅전 옆 아침햇살을 받은 소박한 형상의 마애불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역사를 좀 안다면서 겨레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종알종알 이야기 한다.^^  어릴 땐 그 눈높이로 보고 자랐는데, 크면서 아는 것이 늘어나니 아는 것 만큼 보이는 것도 늘어난단다...





우리보다 더 서둘렀는지 불일폭포쪽에서 내려오는 듯 보이는 등산객도 보였다. 불일폭포는 하동팔경 중 하나라는데, 춥고 약간 힘겹기도 해서 우리는 쌍계사만 둘러보고 나왔다.





지리산자락이 포근히 감싸주는 하동 마을...

지리산 자락,오랜세월... 자연스럽게 사람이 오간 흔적으로 남은 꾸불꾸불한 길들이 인정스럽게 다가온다.





쌍계사에서 가까운 곳에 화개장터가 있다고 해서 잠시 둘러볼까 싶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 지역에서 물놀이가 위험한 이유는?"하고 겨레가 묻는다.

"ㅎㅎ 바로 물이 없기 때문이지. 물놀이를 할 수 없으니까..."

^^




조영남씨가 화개장터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더 유명해진 화개장...예전에 어디선가 읽으니 그 노래를 만들 당시 화개장터에 직접 가보고 만든것이 아니라 신문에 화개장터를 소개한 글을 읽고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들었고 그 노래가 힛트를 친 것이라 한다.

종합안내도를 보니 예전 장터는 없앴고 이후 새롭게 화개장터를 꾸민 모양이다. 원래는 1일, 6일이 장날이었는데 새롭게 장을 꾸민 후는 상설장이 열린다고 한다. 상설장이 열린다 하니 웬지 불안...했다. 우리가 상상했던 정감있는 시골 장터의 모습은 아닐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 갓튀긴 튀김을 꺼내다 놓는 것을 보고 입맛이 돌아 튀김을 좀 사겠다고 했더니, 한도시락 만원이란다...

"그냥 조금 맛만 보려고 그러는데...오천원어치는 안되요?"하고 물었더니

오천원어치는 너무 조금이라 팔 수가 없다는 말 @@! - 우리동네에서는 튀김 이천원어치도 잘 사먹는데...

손님도 없는데다 아침부터 물어보고 안사겠다 하기 그래서 싸달라고 했더니 잘 먹지 않는 빙어만 담는다. 은어 한마리랑 고구마, 야채 튀김위주로 싸달라고 하니...은어는 맛이 없어서 찾는 사람이나 먹지 일반사람들은 못먹을거라면서 안넣고, 빙어튀김만 넣으면서 고구마 튀김 두어개를 끼워준다.(졸지에 은어 못먹는 일반인된 우리)

 ㅠㅠ 튀김을 만원어치나 사본적도 없는데다,겨레도 입에 안대고 나도 싫고 겨레아빠도 안먹어서 하루종일 차안에서  짐만 되었던 천덕꾸러기 빙어튀김...

가끔은 시골 장이 더 무섭더라는...




아침이라 그런지 장이 아직 활짝 열지는 않았지만...





대충 분위기는 이렇다. 먹자골목 위주로...우리가 가보고싶어하는 정선장 같은 분위기는 절대 아니라는 것,

오랫동안 화개장터 한번 와보고싶다 생각했었는데, 상상으로 간직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을 그랬어.ㅠㅠ



씁쓸하게 화개장을 나와 다음으로 간 곳은,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최참판댁. 오늘 아침 물컵에 그려진 서희와 길상이를 못알아 본 토지의 촬영지...^^



입구에 주차를 하고 입장권(어른 1000원, 청소년 800원)을 내고 최참판댁까지 오른다.

날씨는 맑았지만 엄청 쌀쌀한 날이다.



하동은 돌이많은 곳인지 돌담을 쌓은 곳이 많다. 돌담이 보기 좋다.




최참판댁에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는 길 양 옆으로 상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수묵화를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지붕끝에 매달린 곶감을 보고 좋아했다는...(누가? 겨레아빠가...^^)




오르고 오르고...바람은 불고 또 불고...귀도 눈도 입도 손도 꽁꽁...





한참을 올라가다 내려다 보니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곳은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는데, 어젯밤 겨레아빠가 여기서 숙박할까 하고 제안했을 때, 겨레랑 나랑 절대반대를 외쳤었다.(왜냐하면 평일에 한옥에서 숙박을 하면 손님이 우리 밖에 없어 너무나 무섭기 때문이다.^^ 경험상...) 오늘 이곳을 지나치면서 겨레가 여기서 안묵기를 잘 한것 같단다. 밤에 너무 무서웠을 거라고...




최참판댁 도착!

왼편으로 탁 트인 평사리 일대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까 못알아 본 서희는 이집 최참판댁 최참판인 최치수와 별당아씨의 딸이고, 길상이는 최참판댁 심부름꾼...서희는 후에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길상이와 함께 용정으로 이주해 길상과 결혼해 귀향한 후 평사리 땅을 되찾은 후 항일운동을 하면서 평사리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로 살아간다고 한다.(안내서에 나눠준 안내문을 읽어보니...그랬다.^^ 토지 안읽어서 내용 몰라요~!!!)




최참판 최치수가 머무는 사랑채는 마루에 서면 평사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길상이 머물었던 행랑채 앞에는 팽이, 굴렁쇠, 투호등 전통놀이기구들을 갖다 놓아서 겨레와 겨레아빠 한참을 잘 놀았다...^^

평사리 최참판댁외에도 토지마을 장터도 있고,농업전통문화전시관등도 있는데, 겨울이고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문을 제대로 연 곳이 없어 최참판댁만 돌아보고 나왔다.



최참판댁 돌아보고, 하동 떠나면서 들른 곳은 ...하동포구


유유자적 흐르던 섬진강 물줄기가 엄청나게 커지고 물이 많아지는 곳이다.  섬진강 물길 따라 뱃길이 팔십리에 이른다는 '하동포구 팔십리길'


소나무가 많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곳은 방풍과 방사 목적으로 섬진강변에 심었던 소나무가 250년 세월을 거치면서 국내 제일가는 노송숲을 이룬 것이라고 한다.




소나무 숲에서도 바람이 세찼지만 숲을 나오니 대단한 기세의 강바람.  주차장에서 멀지 않아 잠깐 걸어갔을 뿐인데 차갑고 세찬 바람에 이마가 뚫어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기념 촬영 하려고 하는데 얼굴도 못꺼내는 우리딸!



섬진강물이 남해와 만나는 곳, 하동포구...

큰 기대 없이 하동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잠시 들렀던 곳인데, 인상 깊었던 곳이다. 거센 강바람과 포효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 이루는 물소리...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여행

아련함 속에 하동을 떠나면서 잠시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깨어났는데,

"뭘 그렇게까지 자? 코 골고 머리는 시트랑 문사이에 끼워넣고...그렇게 피곤해?" 하고 겨레아빠 묻는다.

 잠깐 잤다싶었는데, 깊이 잠들었나? 아우~ 개운하기까지 하네...^^






진주에 도착해있었다. 진주 유명한 냉면집 하연옥...

이른 점심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아 2층은 꽉 차있었고 3층으로 안내 받았다.

겨레와 나는 냉면 한그릇을 나누어 먹었는데, 양이 푸짐하고 국물맛도 깔끔했다.



얇은 고기에 달걀물을 입힌 육전...고기라 나는 먹지 않았지만 겨레말론 냉면과 잘 어울리는 깔끔한 맛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냉면 위 고명도 육전을 썰은 것이었다.




점심 식사 하고 진주성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진주성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삼국시대에 만들었던 성이지만 우리에게는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이 이끈 진주대첩으로 잘 알려진 곳...그리고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 한 곳으로 알려진 곳...




꽁꽁 얼어붙은 바닥이 너무나 차가워 발바닥을 최대한 웅크리고 촉석루 누각에 올랐다. 강가운데 돌이 우뚝 솟아있다 해서 촉석루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촉석루 아래 오랜 세월 말없이 흐르는 남강이 햇볕을 받아 찬란하다.




촉석루 뒤편으로 의기사 건물이 있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해 순절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의기사를 나와보니 건물 아래쪽으로 계단이 나있다.




계단을 내려가면 남강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나온다.



논개가 순국한 이 바위의 이름은 '의암'

원래는 위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이었는데 논개의 순국후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의암까지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진주성 안에는 김시민 장군 전공비도 있고 호국의 종도 있고 김시민 장군 동상도 있고 국립진주박물관도 있는데, 나머지는 현대에 제작된 것으로 그리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몸이 지친 것이 가장 큰 핑계이기도 했지만...(국립 진주 박물관에가지 않은 것이 조금 걸렸다. 겨레에게 엄마는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다고 했는데, 겨레 왈, 박물관이 다 비슷비슷하지 뭘!   깨깽~)




진주는 하동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하동이 풍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곳이었다면 진주는 도시화되어있어...조금은 답답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잠깐 돌아본 느낌으로는 그랬다.)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 멀리 덕유산이 보인다. 여행 떠날 때는 저 산을 바라보며 돌아오는 길에 덕유산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눈꽃 구경을 하고 돌아오자며 꿈에 부풀었었다. ^^

"내년을 기약해야겠네. 덕유산 눈꽃 구경은..."



여행은 상상할 여지를 남길 때 더 아름다운 법!



진주에서 서울까지...떠날 때와 달리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멀고 멀었다. 떠날 때처럼 휴게소에서 짧은 잠을 자다깨며, 집까지 돌아오는 길...

떠날 때 셀레여서 좋은 것, 돌아오는 길이 있어서 더 달콤한 것!!! 그것이 여행,

겨울을 보내는 여행...


2012.2

겨레는 열다섯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