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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가을 빛 환상, 법주사에서...

by GoodMom 2011. 11. 3.

'가을 단풍이 가장 절정일 것'이라는 예보...

떠나는 길이 막히지는 않을까 좀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가족이 다 함께있는데 막히면 좀 어때...막히면 막히는 곳에서 놀다 오지 뭘...하고 훌쩍 집을 나선 길.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휴게소 표지를 본 겨레아빠 ,


"덕평 자연휴게소네...저기가 친환경적으로 지어진 휴게소라던데 들러서 쉬었다 가야 겠다."
 



휴게소 바깥 쪽에서 본 풍경은 그저 그랬는데,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다 배고프면 간단한 요기나 하고 지나치는 곳,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복잡해서 일 끝나면 빨리 떠나고싶은 곳이 고속도로 휴게소가 아니었나...

그런데 이곳에서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꽤 많았고, 그렇게 들른 사람들은 모두 한참을 여기 저기서 사진도 찍고 놀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이런 저런 요기를 하고(음식 맛도 깔끔하고 괜찮았음) 단풍도 구경하면서 한참을 놀았다.



 휴게소 마당에 떨어진 낙엽, 굴러다니는 깊은 가을의 향기...



 

사진 찍기 좋게 군데군데 놓인 커플 의자들이 여러개 있다...

한 노부부가 쉬고 있는 풍경이 근사해서 한컷!

  

 

 

 간식을 사먹다 발견한 천사 악마커플 의자, ^^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우리도 그냥 갈 수야 없지...

휴게소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 저것 간식거리 사먹고, 사진도 찍고 한참을 놀다

"실컷 놀았으니까 이제 집에 갈까?"라면서 웃었다나...





덕평휴게소 지나 겨레아빠가 졸음이 쏟아진다기에 또다른 휴게소에 들러 차를 세워놓고 셋이서 15분 가량 단잠을 잤다.

자고나니 개운하다...오전에 찌푸렸던 하늘도 맑게 개이고...




한적한 이차선 시골길을 달린다.

마음이 푸근해 진다.

 도시가 좋았던 시절이 지나가는 모양이다. 이런 길만 와도 한주의 고된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매일 같이 이길을 지나면 또 그냥 그런 느낌이 들까.




 '여기부터 말티재'

꾸불꾸불 올라가는 말티재의 시작...

말티재 고개고개 단풍에 감탄을 하며...법주사로 향한다.



 

법주사 근처에 도착하니 차가 너무 많다. 예상과 달리 꽤 복잡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 주차 요금이 무조건 선불 4천원이나 해서 살짝 맘이 상하려고 한다. 우리 아니라도 주차장에 차 댈 사람이 널렸다는 듯이 차들이 물밀 듯 밀려들어온다.

유명한 사찰이긴 하지만 웬 차가 이렇게 많나 했더니...


 오늘 이곳 축제일이라고...노래자랑 대회까지 열렸는데, 스피커를 어찌나 빵빵하게 틀었는지 귀가 터질 듯...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이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럽다. 절 주변이 이렇게 시끄러워서야 스님들이 제대로 도를 닦을 수나 있을까 생각이 든다.

아까 휴게소에서 그냥 돌아갈걸 하는 후회도 살짝 밀려온다.

이곳까지 한적한 길을 따라 오면서 참 좋았는데...




 

도떼기 시장 같던 분위기를 지나 한참을 걸어올라가니, 소음도 잠잠해지면서 법주사 주변 풍경들이 하나씩 다가온다.

와~~

가을이 전설...이라는 표현이 꼭 맞을까?





고운 단풍에 한껏 취한다.

 

선불 주차료, 입구에서의 고성방가, 다시 문화재 입장료 때문에 살짝 상했던 마음이...풍경과 함께 녹아내린다.


 

 

 

쭉쭉 뻗은 나무들...

여름을 견뎌낸 나무들이 마지막 불살라 내는 그 고운  빛깔이 마음을 앗아가버렸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어 올라가서야 일주문 앞에 이르렀다.

 


 

오전에 내린 비때문에 가을색이 더 깊어진  법주사 가는 길...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가,...자연이 주는 고마운 선물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시 한수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신라 진흥왕 때 삼국 통일 기원을 위해 설립된 법주사...

경내 쌍사자석등, 팔상전, 선연지등 국보 3점, 보물 6점,천연기념물1점 등...문화재의 보고인 이곳 법주사

 

 

 

종파를 표시하는 특정 색상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고 또 신성구역을 표시하는 데 쓰인 당간지주..

 고개를 꺾고도 한참을 올려다 봐야 하는 엄청난 크기의 이 당간지주는 고려 목종 시대에 만들어 졌는데, 고종 시절 당백전 주조를 위해 대원군의 명으로 철당간도 파괴되었다가 순종 때 22m의 높이로 복원이 된 것이라고 한다.


 


 

친정엄마가 국민학교 때 이곳 속리산 법주사로 소풍을 오셨었다고 했다...그 때 이곳 커다란 미륵불을 보고 놀랐었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는데, 엄마에게 듣기론 돌로 만든 미륵불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싶어 살펴보니,

신라 혜공왕 때 금동미륵대불로 조성되었던 불상 역시 대원군이 경복궁 축조시 발행한 당백전을 위해 몰수 되었고, 이후 일제 치하 시멘트 부처님을 조성하던 중 6.25동란으로 중단 되었다가, 다시 박정희와 이방자 여사의 시주로 1965년 시멘트 미륵불이 완성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86년 해체되고 1990년 기존 시멘트 불상의 크기와 형상을 그대로 복사해 청동미륵부처를 다시 조성해 모셨다고 한다.   이 불상은 2000년에 청동녹을 벗겨내고 본래의 금동미륵부처님으로 복원해 낸 것이라 한다. 그러니 엄마가 국민학생 때 보았던 미륵불은 돌도 아닌 시멘트 조성중인 미륵불이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이었던 1988년 나도 이곳 법주사에 소풍을 왔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놀랐다는 미륵불을 보았던 기억이 전혀 없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여기 와서 미륵불 연혁을 읽고 나서야, 그 때는 재조성중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랜세월 미륵불도 그 파란만장한 역사와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법주사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팔상전이 아닐까 싶다.

대웅전 앞 오랜 자태를 뽐내며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리잡고 있는 팔상전

팔상전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신라 진흥왕 때 건립된 팔상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 소실되었다가 조선 인조때 다시 지어졌고  최근 다시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탑인 5층 목탑 팔상전, 현존하는 한국의 탑중에 가장 높다고 한다. 높이는 22.7m,국보 55호


 

 

 한국 유일의 목조탑이라 하니 겨레가 이 건물이 탑이야? 하고 놀라워 하면서 묻는다.

탑하면 으레 밖에서만 볼 수 있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팔상전은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는데, 내부 기둥과 기둥 사이 4면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모셔져 있어 팔상전이라 부른다고 한다. 신을 벗고 들어가 한바퀴 돌면서 팔상전을 둘러보았다.


 

 

겨레는 그간 보았던 절 중에서 해인사, 불국사, 백담사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는 백담사가 가장 마음에 남아있었다고...호젓한 숲길,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숲 속 깊은 곳에서 만났던 백담사와 달리 이곳은 관광객과 등산객으로 정말 사람이 많았다.

절에 들어서서야, 아 유명 사찰이 왜 유명한가를 알게 될 정도로 규모가 대단한 절이었다.

 

 

 

역시 국보로 지정된 법주사 쌍사자 석등...

신라 석등중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인정 받고 있는 쌍사자 석등은 등을 받치고 있는 사자 조각이 예술이다. 석조유물에 사자를 조각한 것은 꽤 많으나 조각된 사자상 중 가장 뛰어난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한다.

신라의 유물은 대부분 경주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충청도에서 만난 신라 조각품...

천계를 어지렵혔다는 죄목으로 어깨로 천공을 떠받치는 벌을 받게 된 아틀라스가 생각난 쌍사자...둘이 받들고 있으니 덜 외롭겠구나...

겨레는 벌 서고 있는 듯한 두마리 사자가 너무 귀여워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단다.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는 법주사 사천왕석등 역시 보물 15호,



 

대웅전 앞 나무는 벌써 나뭇잎이 다 지고 빈가지가 앙상하다.

같은 복장으로 템플스테이를 한 관광객들이 경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일반적인 큰 규모의 절들은 한마당 돌아 대웅전 나오고, 또 한마당 돌아 극락전 나오고, 칠성각도 나오는데 법주사는 크고 넓은 한마당 안에 팔상전도 있고, 미륵불도 있고, 대웅전도 있고, 극락전도 있는...독특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을 돌아나오면서 한쪽 공간 세존사리탑을 모신 곳이라 하여 들러보았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이곳 법주사에 왕림했을 때 경남 통도사에 사신을 보내 그곳에 봉안된 석가세존의 사리 일부를 가져오게 해 이곳에 봉안했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네모난 창으로 보이는 사리탑...

건물 뒤로 돌아가 보니...



 

 

단아한 모습의 사리탑이 자리잡고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긴 네모꼴의 이 석조물은 물통이라고 한다.

법주사 3000승도가 물을 저장하고 사용했었다고.  법주사 다른 유물들과 달리 돌로 만들어진 덕일까,  완전한 모습으로 잘 보존이 되었다한다.



 


불붙은 듯 고운 단풍 나무 아래를 지나...바위에 새겨진 불상을 보고...

 

 

 

세월의 이끼를 덮은 커다란 바위 사이를 지나...




 

법주사 입구 들어올 때 보았던, 강 따라 놓여진 돌다리를 건너 나가기로 했다...


 

 

 

돌다리를 건너 개울을 건넌다.

별로 미끄럽지고 않고, 돌도 큼직큼직한데 우리딸은 덜덜덜... 떨면서 아빠 손을 잡고 건넌다.

^^


 

 

 돌다리 건너...

작은 소망 하나 하나 담긴 수많은 돌탑들...

나도 그 작은 돌탑들 사이 돌탑을 하나 쌓아놓고 간다.



 




 


 

 


법주사 길을 한참 걸어 나오니, 해가 저물고 있다.

돌아가는 길에 보기로 한 정이품송을 보고 집으로 가기로...


 

고등학교 때 소풍 왔을 땐 이곳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나무근처에 자릴 잡고 앉았었는데, 지금은 나무 보호차원에서 꽤 멀리 둘레가 쳐 있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 행차 시 임금이 탄 가마가 나뭇가지에 걸려 지나가지 못할 것 같아

"소나무 가지에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자 밑가지가 저절로 들려 그 밑을 통과하게 되자 이를 신기하게 여긴 왕이 정2품의 벼슬을 내려 정2품송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아빠가 이 얘길 들려주셨을 땐, 뭐랄까...믿겨지지 않으면서도 꽤 신기하게 생각이 되었는데...


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겨냈지만 솔잎혹파리 때문에 큰 위기를 겪은 적도 있고 2004년 폭설에 제설작업까지 했지만 상부 큰 가지가 부러지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내 아득한 기억 속, 정이품송의 당당한 모습와는 달리 황혼의 시들어 말라 가고 있는 나무의 모습에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해질녘 다시 말티재를 다시 돌아 나온다.

떠날 때 여행으로 들떴던 마음을 차분히 정리해 주는 돌아가는 길...


 

 

논 가운데 홀로 아담하고 예쁜 집 한채...

굴뚝에서 연기가 나온다. 저녁밥을 짓는 것일까...

 

 

 짧은 가을해는 돌아가는 객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2011.10

겨레는 열네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