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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서산으로 가을 여행

by GoodMom 2011. 10. 6.
 '주말 아침은 잠 좀...' 하는 심정으로 꼼지락 대다 보니, 늦은 아침겸 이른 점심을 먹게 되었다.

"우리 오늘 뭐할까?"하고 겨레아빠 우리 둘을 바라보니,

"어디 멀리 멀리 떠나자!" 는 겨레의 제안,

우리딸, 가끔씩 목적지 없이 일단 멀리 떠나버리자며 옷만 입고 나서는 즉석여행이 그리웠나보다.


"땅 끝까지 달려갔다 올까? 진주 어때? 진주?"

"난 머얼리 갔다 오는건 다 찬성!" - 달리고싶은 사춘기 소녀...^^


진주를 향해 달리기엔 좀 시간이 늦은 것 같고, 고민을 하다 서산에 가기로 했다.

12년전 어린 겨레를 데리고 갔었던 서산여행...

해미읍성 찍고 그 다음은 가서 생각해 보기로...



늦게 출발한 탓에 길이 중간 중간 막히긴 했지만,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우리 딸, 차창 밖 가을걷이가 끝난 빈 논에 중간중간 놓인 비닐(?)을 보고 한 말,

"논에 마시멜로 뿌려 놓은 것 같아."




해미읍성에 도착한 시간은 두시 넘은 시각...이었다.

"해미읍성, 6학년 때 교과서에도 나왔던 곳인데...내가 어릴 때 여길 와봤어?"

"네가 두돌 되기 전이었으니까 기억에 없겠지? 걷다가 힘들어 하면 아빠가 안고 다니면서 보여줬었는데..."





한가로운 토요일 읍성 안의 모습, 구름 한점 없는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 연들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다.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때 왜구를 막기위해 쌓은 성이었는데,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을 대량으로 처형한 순교성지. 이 곳에서 처형당한 천주교인들의 수가 1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왜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 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 자국민 대량 학살 장소로 변한 슬픈 역사가 어린곳...




선녀 모양의 독특한 모양을 한 연 하나가 눈에 띈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치마가 연의 움직임과 잘어울린다.



300년이 넘은 회화나무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이다. 해미읍성 옥사에 수감되었던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 이 나무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을 했는데 아직도 철사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남아있다 한다.

오래 전에 읍성 내부엔 별다른 건물이 없었고, 이 회화나무만 덩그러니 서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12년전, 해미읍성 회화나무 앞 사진


집에 와서 찾아보니 내 기억이 맞다. 예전 회화나무 옆, 힘들어 하는 겨레를 업고 지나는 사진이 한장 있는데, 주변엔 아무 건물이 없다.



새로 복원된 옥사에는 옥사에 갇힌 천주교인 마네킹과 곤장 등이 놓여 있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 곳 옥사에서 고문을 받고 순교를 했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 그도 어느날 갑자기 신부가 된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읍성을 한바퀴 돌고 있는데, 한 곳에 '국궁 체험장'이 눈에 띄었다. 겨레보고 해볼거냐 물었더니 겨레 해보겠단다...

5학년 때 수원화성 가서 활쏘기 체험을 하려 했는데 겨레가 안하겠다 하여 아빠가 많이 아쉬워했었는데, 우리 딸 오늘은 적극적으로 달려가서 장갑부터 낀다.

"오, 장갑 끼는 포스! 멋진데..."




잠깐 동안 활쏘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고, 자세 교정 받고 바로 활쏘기 시작...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최종병기 활놀이 중...^^





겨레도 아빠 옆에서 활쏘기 시작...

활시위가 심하게 팽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스무발을 쏘고 나니 팔이 덜덜 떨리더라나...

활쏘기 완전 재밌었단다. 엄마 몇발 쏴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스무발 다 욕심을 부리고 쏘더라는...

"넌 5학년 때가 사춘기 였나봐. 그 때는 쑥스러워서 못한다고 하더니."

"그러게, 그 때 왜그랬을까..."

그러게 딸아, 뭐든 일단은 해봐야 알지, 해보지 않고는 좋은지 싫은지...알수가 없단다.




활쏘기 체험하고 메밀밭에서 사진 찍고 돌아 나가는 길...

길가 코스모스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반가운 가을 코스모스...




성곽길 위로 돌아 들어왔던 입구 진남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오늘 가을 하늘 맘에 든다. 떠돌기에 참 좋은 날씨다.



성곽 위에서 겨레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겨레가 구부정한 포즈를 취했는데도 나보다 사뭇 크다.

예전에 여기 올 때, 안고, 업고 다녔던 녀석인데... 그 시절 사진을 보면 그 아기가 얘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진남문을 나오는데, 입구에 병졸 분장으로 서계시던 분(여자분)이 먼저 인사를 하신다.
"안녕히 가세요."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담아 나누는 인사에, 이곳에 들어서면서 예전 고즈넉한 옛읍성의 모습이 사라지고 관광지화 된 모습에 다소 섭섭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해미읍성을 나와 다음으로 들른 곳은 개심사...(약속이라도 한 듯)

오후 3시가 넘어가는 바람에 겨레가 배고파서 어쩔 줄 몰라해서( 게다 활쏘기 하느라 체력 급저하...^^) 차에서 간단한 간식을 먹고 개심사로 향했다.



 이곳저곳 시간 나면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여행지마다 가보았던 절이 워낙 많아서 겨레는 불국사나 해인사처럼 크고 인상적이었던 절 외에는 다 비슷비슷한 느낌 때문에 절이라면 거길 가봤는지 아닌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 곳 개심사는 그리 유명한 사찰은 아니지만 십이년전 왔을 때, 우리 부부 모두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받았던 터라...꼭 한번 다시 가보고픈 절이었다. 그럼에도 '굉장히 느낌이 좋았던 절'이었다는 느낌 외에 주변 풍광이며 그 좋은 느낌이 무엇때문이었는지 조차 기억에 남아있질 않아 겨레와 아빠뒤를 따라 가면서도 '그때 이랬었나?'하면서 뒤따랐다는...






일주문 지나 한참을 산을 올랐다. 겨레가 두돌 무렵 갔으니, 분명 이렇게 힘든 산길을 걸어올라가지 못했을텐데, 그랬음 겨레를 안고 업고 올라가느라 지금보다 두배는 더 힘들었을 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올라갔던 기억은 전혀 없는걸까? 했더니... 겨레아빠 왈,

"내가 안고 갔겠지, 너한테 겨레를 업으라고 했겠어? 이 산길에서... 너혼자 몸도 못가눠서 맨날 넘어지는데...ㅋㅋㅋ"

^^ 그랬다고 하더라도 왜 이 산길이 기억에 전혀 없는건지...

헉헉헉! 운동 좀 해야겠다.



여기에 이르러서야...아! 하고 떠오르는 장면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고요한 경내, 푸른 연못을 지나 외나무 다리 건너 개심사로 향하던 그 풍경...

고스란히 살아 나온다...오래된 기억 속에서...




조용하고 아름다운 사찰이란 기억의 한자락은 이 장면에 머물러 있었다.









등산객 몇몇이 쉬고 있을 뿐, 오늘도 조용한 개심사 사찰..

개심사는 의자왕 때 혜감국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올라오면서도 느꼈지만 사찰 주변의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들, 이곳은 석가탄신일 즈음에 오면 벚꽃이 만발해 그 경관이 굉장하다고 한다.

 봄바람 살랑살랑 풍경소리에 벚꽃이 흐드러진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살짝 길을 돌아 대웅전으로 향하는데...



돌담에 쓰인 해우소 표시 화살표...음성지원이 되는 것 같다. 마치 '쇽쇽쇽쑤융~' ^^

화장실을 알리는 화살표의 각도가 재밌다.



개심사 대웅전, 대웅전 기단만 백제 시대 그대로이고, 나머지는 화재로 소실되어 조선 성종때 중건한 것이라 한다. 대웅전 건물 자체 양식이 다포계와 주심포를 절충한 단층겹처마 맞배지붕집 형식이라 하는데, 주심포는 들어는 본 말이지만 다포계는 아예 생소...공부를 더 해야겠다.


암튼 이런 양식으로 지어진 이 개심사 대웅전은 보물 143호로 지정된  건물이라 한다.

대웅전 내부도 조용...하다. 예전에 왔던 그 조용했던 그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고 할까...



나무의 모양을 그대로 쓴 범종각 기둥이 멋스럽다.




마음을 열고 내려가는 길이라는 문구. 웬지 마음이 정화되고 깨끗해진 느낌...





졸졸졸 흐르는 물, 앞서가는 겨레가 아빠 손을 잡고 미끄러지지 않게 내려간다.

하루 종일 끊임없이 속닥속닥 종알종알, 깔깔깔 킬킬킬...우리 딸, 아빠랑 무슨 얘깃거리가 그리 많은지...아빠가 있을 땐, 엄마는 늘 찬밥...




한참을 내려와 일주문 지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나...



둥글둥글 깎은 산 여기 저기 소떼가 보인다. 방목해서 키우는 소들인 모양이다.

소를 보고 느낀 각자의 감상...^^




 가을을 맞은 초원이 양옆으로 펼쳐지는 한적한 이차선 도로를 달리는 마음이 평화롭다.



"마애삼존불도 보고 갈까?" 


준비하지 않고 떠난 여행의 재미는 이런것...!

"지금 가면 해질무렵이라 딱 좋겠네."

"난 서산 마애 삼존불,롯데월드 민속 박물관에서 여러번 봤는데..."(겨레)

^^



삼불교 다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안내표시를 따라 마애삼존불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생각보다 엄청 가팔랐던 돌계단을 올라가면서, "아, 그냥 등산화 신을걸..."하는 후회 잠깐...

밑창이 얇은 스니커즈를 신었더니, 발바닥도 아프고 미끄럽다.
구두에 치마에 구름모자에...남들 여행 사진 보면 우아한 사진도 많던데, 우리의 여행은 늘 생야생 버라이어티~



5분여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오면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마애삼존불에 대한 해설을 신청하면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관리사무소 지나 불이문 지나 다시 걷는다. 주변 풍경이 대단하다.

마애불이 절벽의 암벽이나 거대한 바위에 선각으나 돋을새김 기법을 사용하여 불교 주제를 나타낸 것이라 하니, 이런 풍경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왜 나는 그간 서산마애불 하면 호젓한 바닷가 암벽을 상상하고 있었을까? 울산 암각화 이런 상상 때문인가...



해가 저물무렵이라 아름다운 광경과 만날 수 있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마애여래삼존상...얼굴 가득 자애로운 미소에 나도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달라지고 빛과의 조화에 의해 진가를 보이도록 제작되었다는 삼존불.



중앙에 석가여래입상, 좌측 제화갈라보살입상, 우측 미륵반가사유상을 배치했는데 이는 과거,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3세불 형식이라고 한다.

본존불의 살아있는 듯한 온화한 미소, 백제인의 따뜻한 마음이 보이는 듯 싶다. '시간을 초월한 만남'이란 생각 때문인지 오래된 유물을 만날 때의 기분은 참 야릇하다. 삼존불을 새긴 그 누군가는 나 이후 천년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석양이 진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데 문득, 다시 떠오르는 장소,

"학암포 해수욕장이 여기서 멀까? 거기 가보고 싶네."

종일 끌고 다녔더니 겨레는 뒷좌석에서 잠이 들었다.



"어? 여기 어디야? 집으로 가는 길 아니었어?" 겨레가 부시시 눈을 뜨고 일어났다. 차문을 열고 나오니 바다내음,

방파제 같은 것이 세워져 바다가 잘 보이질 않는다.

딸내미와의 장난질 시작! -난 겨레의 소중한 베프니까...^^(베스트 프렌즈)

 


달려가서 힘껏 뛰어올라 누가 먼저 방파제 위로 올라가나 해볼까?

겨레가 신이 났다. 파다다닥 주르르륵~ 파다다닥 주르륵

그 옆에서 나도 신이 나서 온 힘을 다해 뛰었는데, 떨어질 때 달려갔던 그 속도를 감당 못해 그대로 뚝! 떨어지는 바람에 엉덩이가 아파 돌아오는 길에 자리에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는 슬픈 전설...

"엄마 너무 웃겼어.아까... 이제 다음주 요가 어떻게 가지...ㅋㅋ 나도 지난번 욕실에서 미끄러져서 요가 가서 카오스를 맛봤는데..."

^^ 내가 그렇게 웃기게 떨어졌어? 멋지지 않았나, 혹시...떨어지는 자태도...





학암포, 연애시절 바다가 보고싶어 와봤던 곳이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라 하루종일 버스 타고 또 버스 타고 와서, 바다 잠깐 보고 또 하루종일 버스 타고 또 버스 타고 집으로 갔던...

다른 기억은 없는데, 방파제에 올라와 보니 기억이 난다. 저 작은 섬을 봤던 기억...소나무가 많았던 기억...

겨레를 낳기 전 갔던 추억의 장소에 겨레를 데리고 가면 만감이 교차한다.

이녀석이 그당시 없었다는 것도 새삼 신기하고, 그리고 왠지 모를 약속을 지켰다는 그런 느낌...

바다야, 내 딸이란다...그 때 같이 왔던 그 사람이랑 결혼해서 이렇게 이쁜 딸을 낳았고, 그 딸이 벌써 열네살이야...뭐 이런 손발 오그라드는 멘트는 마음 속으로 혼자 날려주시고...!





오랜만에 일상을 벗어난 장거리 여행...꾸벅꾸벅 졸면서 돌아온 여행길,

여행은 떠날 때도 신나지만 두다리 쭉 뻗고 쉴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도 참 좋다.


2011.9

겨레는 열네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