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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by GoodMom 2011. 9. 9.

 

얼마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공개한 '외규장각 의궤'를 보고 왔습니다.

방학중인 겨레 친구와 시간을 맞춰 같이 보고싶었는데, 도저히 시간이 맞질 않아, 결국은 겨레와 둘이 보게 되었네요.

전철역에서 중앙박물관까지는 걷기엔, 날씨가 너무 더웠는데, 이번에 가면서 보니 전철역으로 바로 이어지는 공사를 하면서 이렇게 서문을 뚫어 예전보다 걸어가기 많이 수월해졌더군요.



서문으로 들어가 전시실로 향하는 길에도 대나무 화분을 양쪽에 쭉 세워 땡볕을 피할 수 있어 한결 좋았습니다. 입구부터 이 길 걸어가려면 5월에도 힘들었는데...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 전시기간: 2011.07.19~2011.09.18
  • 관람료: 무료
  • 국립 중앙 박물관 http://www.museum.go.kr/




 

 

14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의궤는 중앙박물관에서 지난 7월 19일부터 일반에게 공개 되었는데요.  9월 18일까지니,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의궤가 전시된 특별전시실은 조선 전시실 I,II관과 함께 있는데요. 입장 전 노랗게 화살표시한 곳에서 의궤 반환과정과 의궤에 대한 영상물을 보여주고 있어  보고 들어가니 전시 이해가 훨씬 빠르게 와 닿았습니다. 



의궤는 왕실과 국가에서 의식과 행사 후, 준비, 실행, 마무리까지의 전과정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것을 말합니다.  모든 의식이 종료 된 후, 왕의 열람을 위한 어람용과 여러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구분 하여 5~9부 내외의 의궤를 제작한다고 해요.


▲ 왕의 열람을 위한 어람용 의궤 반차도


어람용은 붓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안료로 칠했으나 자료 보관용으로 만든 분상용(↓아래)은 도장을 찍어 인물을 배치하고 색상도 단조롭다고 하는데요.

이번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 중에는 동일한 행사에 대해 어람용과 분상용으로 달리 제작된 것이 있는데 이를 비교해 보면 어람용 의궤의 종이 질과 글씨 수준이 얼마나다른지 확연히 구분이 갑니다.


 ▲분상용 의궤 반차도 (위 어람용과 동일한 내용)


동일한 내용의 의궤 반차도가 나란히 있어 왕이 직접 보는 어람용과 보관용인 분상용의 차이를 아이들이 한눈에 비교하면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 유일본이자 가장 오래된 외규장각 의궤

 

 ▲ 강화도 외규장각의 모습

정조는 조선 왕조의 왕실도서관이며 학술 연구기관으로 규장각을 만들었는데, 이후 1782년 강화도행궁에 외규장각을 완공해, 어람용 의궤등 왕실의 중요한 자료를 옮겨서 보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외규장각은 의궤를 보관한 장소인 셈이지요.

의궤는 영 ·정조 시절 많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 오대산 사고에 보관했던 삼베 표지의 분상용 의궤(좌),  초록색 비단으로 표지를 싼 어람용 의궤(우)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임금이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와 보관용인 분상용 의궤는 겉표지부터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실제로 보면 분상용의 표지(삼베)와 어람용의 표지(비단)는 더욱 더 확연히 차이가 나더군요.

어람용 의궤는 초록 비단표지로 만들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에는 노란 비단 표지는 황제에게, 붉은 비단 표지는 황태자에게 올렸다고 합니다.

 


 

전시는 의궤를소개하기 위해 6부로 나뉘어져 있어요.

의궤에 대한 설명부터 왕실의 혼례 등 의식을 기록한 것, 왕실 장례에 관한 의궤, 추모에 방식, 그리고 병인양요부터 현재 의궤의 귀환 과정등을 전시해 놓았는데요. 의궤 뿐 아니라 의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물들도 좋았고, 묘의 부장품등도 함께 있어 전시 이해를 돕습니다.


 

 ▲ 한글이 써 있는 '보사녹훈도감의궤'



의궤에 한글 문장이 적혀 있는데요. 의궤에 한글이 기록된 희귀한 사례라고 하네요. 이 앞에서 많은 분들이 한글을 읽으려고 서 있어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볼 수 있었어요.


 

▲ 신정왕후 팔순 기념, 경복궁에서 열린 잔치그림


신정왕후는 순조의 장남 효명세장의 빈으로 세손인 헌종을 낳았으나 효명세자가 요절하여 왕비가 되지는 못했지만, 헌종,철종, 고종대에 풍양 조씨 세도 정치의 중심인물로 안동 김씨 권력을 견제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녀는 이 앞에 한참을 서 있었어요. 춤추는 그림이 너무 잘 그려졌다고 감탄을 하면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 손과 발 동작 하나하나 부터 자세히 들여다 보면 표정까지도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냈는지 모릅니다.


 


위 그림을 모형으로 재현해서 한쪽에 전시 중이었는데요. 이걸 보고 겨레가 한 말,

"입체모형이래도 그림을 못따라 가네...그림이  당시 상황을 훨씬 더 잘 묘사한 것 같아."



 

▲ 15세 정순왕후와 영조의 혼례식을 기록한 의궤,


이 의궤에는 영조가 정순왕후를 궁으로 데리고 가는 <친영반차도>가 실려있는데 379필의 말과 129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중요한 행사 일수록 참여한 사람이 많아서 반차도의 길이가 길어졌다고 해요. 행사가 있기 전에 행사에 참여할 사람들은 미리 만들어진 반차도를 보고 자기 자리를 확인하고 연습도 했다는 군요.

어쩜, 말 뒤태까지 너무 잘 그렸다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




전시실은 평일인데도 의궤를 보러온 사람들이 많아 한참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봐야만 했어요.

 


전시실 내부에도 다양한 영상매체를 적절하게 잘 활용한 것이 눈에 띄었는데요. 앞에 보이는 의궤에 그려진 행렬을 영상을 통해 움직이도록 만들어 더욱 실감나도록 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 왕실의 장례 절차를 담은 의궤



의궤를 보고 왔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면서 아는 분들께 꼭 보시라고 권하니 의궤에 이렇게 한자만 있어서 재미 없지 않나 하고 물어보시더라구요. 절대 절대 아닙니다. 그 화려한 그림들이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정말 못보신 분들, 꼭 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사도세자 무덤을 수원으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


결혼 전에 수원에 있는 융건릉을 여러번 갔었는데, 그 때는 융건릉으로만 알았지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인줄은 몰랐습니다.^^  딸 키우면서 딸과 함께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겨레엄마예요.

의궤의 다양하고 풍부한 그림들은 글만으로 전달 되기 힘든 내용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해줍니다.

 

 ▲ 사도세자가 사용했던 휘지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정치를 가르치기 위해 대리청정을 시켰을 때, 세자가 사용했던 휘지라고 합니다. 전시에는 의궤 뿐 아니라 의궤의 설명을 잘 받쳐줄 수 있는 전시물들이 같이 전시되어있었어요.

 


▲  의소세손 무덤의 부장품




 실제로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원 화성의 성곽 일대가 파괴되었을 때도 화성 건축 과정을 그대로 담아 놓은 '화성성역의궤'를 보고 원래의 모습대로 다시 복원할 수가 있었다고 하지요. 실로 만세에 걸쳐 행해지도록 만든 것이라는 실록의 말이 꼭 와닿습니다.


의궤 전시실 6부 코너 벽면에 의궤를 훔쳐가는데 큰 역할을 했던 쥐베르의 '조선원정기'에 서술한 기록이 눈에 띄더군요.




' 1866년, 프랑스는 천주교 탄압사건을 구실로 병인양요를 일으키고 강화도를 점령했지만  조선군의 분전으로 수세에 몰리자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를 비롯한 189종 340여 책 기타 자료와 은괴등을 약탈하고 강화도의 장녕전, 외규장각 등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였다.

과거 속에 묻혀졌던 외규장각 의궤는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 그 존재와 행방이 알려졌다. 이후 국내 학술단체와 정부가 중심이 되어 의궤의 반환을 추진하였고, 1993년 1권이 먼저 돌아오게 되었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G20정상회의 중 대한민국 프랑스 양국 정상의 합의와 이후 그 후속 조치에 따라 외규장각의 의궤가 돌아오게 되었다. 이에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왔던 외규장각 의궤 297권은 145년만에 모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이 있는 행궁 등 주요시설에 불을 지른 사실과 불을 지르기 전 이곳에서 은괴와 의궤를 비롯한 도서들을 본국으로 우송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는 책입니다.



 ▲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의 침략과정과 전투상황이 상세히 묘사된 주간지





병인양요 때 약탈 당했던 우리의 의궤는 '145년만의 귀환'이라며 온 국민의 환영을 받으며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사실 '5년 단위 대여 갱신 방식'으로 반환이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영구 귀환이 아닌 '임대'라는 형식을 빈 것이지요.  프랑스가 재계약 시점마다 어떤 요구를 해 올지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약탈 문화재인데, 왜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나 하는 답답한 심정이예요.




<추천하는 책>

 조선왕실의 보물 의궤   유지현 글/이장미 그림/토토북


 

 2009년에 구입한 책이니까 겨레가 5학년 때였네요.


의궤가 영조와 정조 임금 시대에 많이 만들어 졌다는 얘기를 위에서 한번 했는데요. 이 책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의궤를 중심으로 왕의 탄생-왕의 활쏘기-왕의 결혼-왕의 제사-왕의 건축-왕의 행차-왕의 죽음을 그 행사를 기록해 놓은 의궤와 함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게 써놓았습니다.



겨레가 참 재밌게 여러번 봤던 책인데, 이번에 전시를 보고 와서 다시 보니, 전시실에서 봤던 것들이 다시 쏙쏙 들어오네요.

여기 소개된 의궤들은 어람용이 아닌 분상용이었구나...^^라는 얘기도 했구요. 전시를 통해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나온 책이지만 어른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설명이 잘 씌여진 책입니다.




2011.9

겨레는 열네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