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집에서 뒹굴뒹굴 하면서도 겨레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답니다. 금요일이 되면, 가슴이 설레고 흥분이 된다나요.
이 이야길 남편에게 했더니
" 주말에 아빠가 집에 있으니까 그런거 아닌가! 주말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아빠를 기다리는 거지."
꿈보다 해몽이죠?
^^
겨레가 흥분 된다는 금요일에 찾은 창경궁 모습입니다.
덕수궁, 경복궁은 자주 찾았지만 창경궁은 처음 찾아갔습니다. 서울 과학관 옆 창경궁, 과학관 갈 때마다 다음엔 창경궁에 꼭 가자고 겨레랑 약속을 했는데 이제야 찾았네요.
창경궁은 성종임금이 선왕의 세 왕비를 모시기 위해 지은 궁궐이라고 합니다. 경복궁이 법궁이라면 창덕궁은 보조궁궐로 사용했는데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창덕궁의 생활공간이 비좁아졌고, 이에 창덕궁 옆에 마련한 궁궐이 창경궁이라고 해요.
이 곳은 왕이 정사를 돌보기 위해 지은 곳이 아니라 규모나 배치 등이 경복궁과 다르고 전각의 수도 많지 않아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한 곳, 숙종과 장희빈, 인현왕후의 이야기가 있는 곳. 그리고 우리에게는 '창경궁'이라는 이름보다는 '창경원'으로 불리웠던 곳이 이 곳, 창경궁이죠.
정전인 명정전 내부
왕의 어좌 뒤에 놓이는 일월오봉도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볼 수 없는 조선에서만 기록되고 확인되는 우리 고유의 문화와 사상을 담은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곳, 명정전은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가례식이 치러진 곳이라고 하네요.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했다는 숭문당의 현판은 영조임금의 친필이라고 해요. 겨레랑 한참을 올려다 보면서 너무 깨끗해서 영조시대 씌여진 것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처마 밑 그물들은, 새들이 집을 짓지 못하도록 씌운 것이라고 겨레가 얘길 해주더군요.(건물 보호 차원) 4학년 때 소풍 갔을 때, 해설사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셨는데, 친구들과 떠드느라 다른 기억은 잘 안나고, 그 얘기만 기억에 남는다나요...
고궁에도 봄이 옵니다. 생강꽃이 한창이네요.
위태위태해 보이는 나무를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보물 851호 간천대
천체를 관측하던 시설이라고 해요. 일제 강점기에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다가 창경궁 정비 사업 때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따라 여행을 하다 보면, 35년이란 시간 동안 일제에 의해 사람이나 물건이나 뭐하나 제자리에 가만 두어진 것이 없다 싶습니다.
관천대에 돌계단 이끼가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창경궁터는 규모가 아담하고, 높고 낮은 지세를 따라 자연스럽게 전각을 지었기 때문에 겨레랑 봄 날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참 좋았습니다.
창경궁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 앞에서 겨레와 한참을 바라보았던 사진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변신했던 시절의 흑백 사진이예요. 대관람차도 보이네요. 엄마 아빠 어린 시절에는 이곳이 놀이공원인 줄 알았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불리웠다는 얘길 해줬어요.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궁안의 전각들을 헐고, 식물원과 동물원을 짓고는, 한일합병 이후 창경원으로 격하 시켰다고 해요. 종묘를 잇는 산맥도 절단하고 도로를 설치했고, 궁안에 벚꽃을 잔뜩 심어 밤 벚꽃놀이를 했다고 하죠.
1983년에야 복원 공사가 시작되 현재의 창경궁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
통명전 내부는 신을 벗고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들어 올 수 는 있지만 '마루에 눕지 마십시오.'라고 써 있어서 겨레가 웃었어요. "여기서 눕는 사람도 있나봐..." 라면서요.
우리를 따라 외국인 아저씨도 살금살금 조용히 내부 구경을 합니다.
통명전에서 겨레에게 퀴즈를 냈습니다. "왕이나 왕의 침전에는 다른 건물과 달리 없는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뭘까?"
겨레가 갸우뚱~ (쫌 오래 되긴 했지만 경복궁에서 설명 해준 적 있는데...)
왕과 왕비의 침소에는 용마루가 없습니다. 용마루는 왼쪽 건물 지붕 위 길쭉하게 댄 것인데요. 통명전 지붕엔 용마루가 없지요. 왕=용으로 상징되어있기에 왕의 침소에 용마루를 놓으면 두마리의 용이 머문다고 생각하여 침소에는 용마루를 놓지 않는다고 해요.
통명전 돌아 나온는데 돌담 사이 소담스럽게 핀 꽃을 보고 겨레가 감탄을 합니다.
제비꽃인가요? (꽃이름은)
진달래도 물이 잔뜩 올라와있습니다.
꽃망울 터뜨릴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듯...설레는 봄 날이예요.
풍기대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인 풍기대...봄바람이 깃발에 나부낍니다.
성종의 태실과 태실비
통명전을 돌아 뒷쪽으로 올라가면 성종의 태실과 태실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왕족의 태반을 전국의 풍수가 좋은 명당에 묻어 놓았는데, 일제에 의해 조선왕실 태실 대부분을 서삼릉으로 모았다고 하네요. 그 과정에서 형태가 가장 온전한 성종태실만을 이곳으로 옮겨 연구용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성종 태실이 있다기에 반갑게 찾아왔는데, 이곳에도 이런 아픔이 있었네요.
알싸한 향기가 나는, 이른 봄 피는 생강 나무 꽃입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김유정문학촌에서 알았던 사실이랍니다.)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나와 점순이가 쓰러지면서 맡았다는 동백꽃향은 우리가 아는 붉은 동백꽃이 아닌 바로 이 노란 생강 나무 꽃이랍니다. 문학적 표현 그대로 정말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난답니다.^^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의 동백꽃 중>
춘당지
이곳에도 아픈 역사가 숨어있더군요. 이곳은 본래는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던 곳인데, 일제가 이 곳을 파헤쳐 큰 연못을 조성해 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창경궁 복원 과정에서 전통 양식의 연못으로 새롭게 조성을 했다고 하네요.
춘당지에는 원앙이 무리지어 놀고 있습니다.
원앙이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우리 딸 너무나 이쁘다고 굉장히 오랫동안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엄마, 원앙은 목각인형이랑 똑같다. 어쩜 저렇게 인형같지? 귀여워!!!" ^^
키만 훌쩍 자랐지, 아직도 마음은 어립니다. 얼마나 오래 원앙무리를 지켜보던지요. 어린시절 물가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리를 지켜보곤 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인 대온실
1909년 창경궁 옆 창덕궁에 거처하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하에 일본인이 동물원과 함께 지은 곳이예요. 일본인이 설계하고 시공은 프랑스의 한 회사가 맡았는데 당시에는 동양 최대 규모였다고 하네요.
'좀비비추' ^^ 이름이 특이하죠?
할미꽃도 식물원에서 만났습니다. 어린 시절 풀밭에서 보곤 했는데...이제는 이렇게 식물원에서나 만날 수 있네요.
현재는 우리나라 천연 기념물이나 야생화, 자생식물을 전시하고 있답니다.
유리온실에서 활짝 피어있는 진짜 동백꽃...입니다.
지붕에 조선황실의 상징문양인 오얏꽃 문양으로 장식을 했다고 하여 겨레와 올려다 보았습니다.
쉬었다 걷고, 쉬었다 걷고 하다 보니, 해질녘이 되어갑니다.
간만에 오후 시간 내내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더군요.(배도 꼬르륵...)
" 오늘 봄 소풍 재밌었어?"
하고 물었더니 겨레,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재밌었는데, 이거 말고 정식 봄소풍 가자고 하네요.
^^
다음 봄소풍지는 어디로 할까?
봄내내 봄소풍, 여름내내 여름소풍, 가을내내 가을소풍...
이런건 어떨까 싶네요...^^
2011.4.11
겨레는 열네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