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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패배자의 찌질한 정신승리법! 아Q정전

by GoodMom 2012. 9. 3.

 

 아Q정전      루쉰 소설/자오옌녠 그림/이욱연 옮김/문학동네


어린시절 우리집에는 서른권짜리 세계명작전집이 있었는데요, 그 서른권의 책 가운데 한권이 아큐정전이었어요.

피노키오, 별아가씨, 해저 이만리, 십오 소년 표류기,소공녀,소공자, 홍당무 이런 책 들 사이에 끼어있었던 아큐정전은 읽었던것 같긴한데 재미는 별로 없었고 살짝 무서웠던 기억도 있었던 책...

최근 겨레가 이 책을 읽고싶다 해서 떠오른 어린 시절 기억......피노키오를 읽을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분명 맞지 않는 책이었는데 거기 끼어있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 일었는데요...책이 귀했던 시절이니 연령대 폭을 넓게 해서 판매를 하면 엄마들에게 호응이 높아서 그렇게 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습니다.




겨레와 함께 서점에 책을 찾으러 갔다가 번역된 여러권의 아Q정전 가운데서 비교적 얇고(!^^) 책 모양도 이쁘고...무엇보다 흑백 판화가 눈길을 끄는 문학 동네에서 나온 아Q정전을 골라왔습니다. - 예전에도 얘기했듯이 저는 그림이 함께 나오는 책이 좋아요...^^


새 책을 사게 되면 각자 읽을 때도 있지만, 셋이 모두 읽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런 경우, 책의 주인은...그 책을 사겠다고 말했던 사람이 되지요.(고로 아Q정전은 겨레책) 겨레가 책 주인일 때가 제일 힘들어요. 책을 쫙쫙 펴서 읽지 말라고...제본이 분리되는 아픔을 몇 번 겪고 나서는, 자기가 주인인 책은 어찌나 잔소리를 하는지, 책도 방바닥에 못굴리고, 책갈피도 눈치 보면서 끼운답니다.(방바닥에 나뒹구는 책은 내책이거나 겨레아빠책...^^)


겨레가 먼저 사겠다 했으니 책의 주인은 겨레였지만 어린 시절 아Q정전에 대한 기억 때문에 제가 먼저 읽었습니다.

그런데...뭐랄까...

이렇게 재밌던 책이었나 할 정도로 재밌게, 속도감 있게 읽어내렸던 책입니다. 중간 중간 판화로 된 삽화까지 포함해서 100페이지 가량 작은 판형의 책이니...휘리릭!할만도 하죠...


"와, 겨레야, 아Q정전 빨리 읽어봐...엄청 재밌게 읽었어. 엄만..."

"엥, 어릴 때 재미 없게 읽었던 책이었다면서...?"

"그러게, 그 땐 너무 어려서 그랬나? 엄마가 피노키오나 별아가씨 정도 재밌게 읽을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아꾸이인지 아구이인지 분명치 않은 이름때문에 영국식 철자법으로 아Quei라 쓰고 약자로 아Q로 불린 아Q의 이름에 대한 내력으로 시작되는 아Q정전은 말 그대로 주인공 아Q의 일생을 적은 글입니다.

인공 아Q는 집도, 일정한 직업도 없이 하루하루 남의 집 날품팔이를 하면서 웨이좡 마을 사당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며 살아갑니다.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한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기만한 아Q...는 서러움을 당하면 특유의 정신 승리법으로 자신을 타이르는데요. 어느 날 마을 자오나리네 날품을 팔러갔다가 그 집 여종을 희롱하는 바람에 경을 치고 마을에서 일거리가 끊어지자 웨이좡 마을보다 큰 성 안에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한참만에 잡다한 물건들을 들고 나타납니다. 아Q를 무시했던 동네 사람들은 아Q가 가져온 물건을 사기 위해 아Q를 추켜 세우는데...알고 보니 그가 가져온 것은 성에서 훔쳐온 장물들...이를 안 동네 사람들이 다시 아Q를 무시합니다.어것이 분한 아Q는 혁명소문을 듣고, 자신도 혁명을 해서 신세를 고쳐보려고 혁명당원들 흉내를 내며 마을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다니지만 혁명당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결국 도둑으로 몰려 혁명당원들에게 끌려가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예요.



 

이 책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요.

전반부는 찌질한 아Q가 정신승리법을 통해 손해를 보거나 패배를 당해도 그걸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후반부에는 혁명을 혐오했던 아Q가 혁명당에 가입하려고 했으나 결국 도둑으로 몰려 허무한 죽음을 맞는 이야기로 나뉘는데요.

여기에 아Q가 그토록 소속되고 싶었던 혁명과 중국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조금 하고 나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 아Q정전에서 이야기하는 혁명은 1911년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을 말하는데요...

아 Q정전이 나올 당시 중국은 서구 열강에 시달리는 반식민상태였습니다. 여기서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끝없이 강한...스스로 합리화에 강한 찌질함의 대명사 주인공 아Q는 당시 중국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서구 열강의 밀려오면서 개방은 시작되었으나 아직 봉건 사회의 계급이 존재하던 시절이었고,그 계급에 따라 작은 마을인 웨이좡 마을에도 지주층인 자오씨 집과 아Q 행동 하나 하나에 동조했다 멸시 했다 하는 소작농 계급의 마을 사람들...그리고 아Q가 무시했던 쌰오디, 부정부패의 대명사였던 행정관...


아Q가 자신의 괴롭히는 자보다 자신을 더 위에 두는 방법으로 또는 자신을 벌레보다 못한 놈이라고 여겨 자신을 때린 사람들을 벌레를 괴롭히는 찌질남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라든지 많이 맞았지만 맞는 나는 기억하지 않고 때린 나만 기억하는 방식으로 특유의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을 위로해 가는 아Q를 통해 중국이 직면한 위기와 국민 의식을 자기 반성이 없기 때문에 변화 없는 삶이 지속 되고 있을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반부에서 혁명을 혐오했던 아Q가 혁명당에 가입 하려 했으나 결국 도둑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이야기를 통해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혁명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지배계층의 자제이거나 신식청년들로 이루어져 그토록 혁명당에 가입하기를 원했던  아Q는 주인으로 설 수 없고 오히려 죽음의 공간으로 내몰았다는 점을 통해 '신해혁명이 민중의 삶이나 혼은 건드리지 못한 채 단순히 이름 바꾸기 혁명'이었음을 꼬집고 있습니다.




 

아Q정전은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작가 루쉰의 대표작입니다.

이 책에서 작가 루쉰은 중국이 직면한 위기와 국민의식을 아Q라는 인물을 통해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 신해혁명 전후 중국사회의 모습을 아Q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중국 민중의 자화상처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요.


루쉰이 생각한 진정한 혁명이란 정치 경제 차원 뿐만 아니라 사상, 가치관, 습관, 풍속등 문명론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지는 궁극적인 변혁이었다고 해요.

이런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아Q정전은 당시 루쉰의 현실인식과 중국 변혁에 대한 사고가 집약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발표 된지 100년이 넘었지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고 진정한 변혁을하기 보다 기회를 얻으려 들고 꼼수를 부린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바가 크다고 할수 있네요.

또 하나 책의 묘미라고 꼽는다면, 루쉰 작품을 깊이있게 연구해 온 중국의 대표 판화가인 자오옌녠의 사실주의적인 흑백 판화와 군더더기 없은 번역을 꼽고싶네요.  




+ 함께 읽어볼만한 책: 들풀   루쉰 지음/이욱현 옮김/자오옌녠 그림/문학동네




2012.9.3
겨레는 열다섯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