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가족이야기

결혼 14주년

by GoodMom 2011. 4. 19.

"휴지 걸 때, 이 방향으로 안걸면 좋겠는데..."

"난 이렇게 거는게 편한데...휴지 이렇게 거는거 맞아. 네가 걸면 불편하더라, 난"

 

결혼 초기에 화장실 휴지 거는 방향 때문에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니 친구가 묻더군요.

"휴지도 거는 방향이 있어?"

 

위 사진은...

남편이 선호하는 휴지 거는 방향이고...

아래 사진은 제가 좋아하는 휴지 걸이 방향이랍니다.

(뜯겨진 휴지가 위로 오는가, 아래로 오는가...의 차이죠.^^)

 

 

어릴 때 엄마가 휴지를 이 방향으로 걸어놓으셨나봐요.

휴지를 뜯을 때, 내가 익숙한 방향이 아니면 왜그런지 불편함,

그 때문에 때론 남편이 걸어놓은 휴지를 바꿔 걸어놓기도 했지요.

 

결혼 10년이 훌쩍 지나고 어느날,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네가 걸어놓는 방향이 편하더라.예전 방향으로 걸려있으면 내가 이제 바꿔 걸게 되던데..."

이 말이 어찌나 우습던지요.

그 즈음, 저는 휴지를 걸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까짓 방향이 뭐가 중요하다 그랬을까? 남편 좋아하는 방향으로 걸어줘야지."

^^

그러니까 내가 일부러 남편 좋아하는 방향으로 걸어주곤 했던게 남편은 또 내 방향으로 거는데 익숙해져서 그렇게 바꿔 걸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이렇게 결혼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인가 봅니다.

.

.

.

라는 생각도 잠시....

 

 얼마전의 일이예요.

아침부터 겨레랑 운동 갔다 와서 집 정리하고 겨레 공부 좀 봐준다며 정신 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옵니다.

"집에 혹시 내 파란색 가방 있어?"

"파랑색 가방? 그런거 없는데..."

"집에 두고 온 것 같아서 그래, 있나 빨리 찾아봐."

안방을 두리번 거리는데, 평소 남편이 들고 다니는 검정 가방이 눈에 띕니다.

"검정 가방은 있는데 파란 가방은 없어. 자기 가방 중에 파란 색 없잖아?"

"남편 가방도 모르냐? 내가 요즘 들고 다니는 서류 가방 있잖아."

"그래, 그게 검정 가방이지, 무슨 파란 가방이야. 그 검정 가방은 있어. 파란 가방은 없고."

"그 색이 파랑이지, 무슨 검정이야? 집에 있으면 됐어." 하더니 전화를 덜컥 끊어버립니다.

 

덜컥!

이렇게 일방적으로 말하고 끊는 것만 아니었으면 참았을지도 몰랐을 일이었는데

순간...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방에 있던 겨레를 불러,

"겨레야, 이게 파랑으로 보여? 검정으로 보여?"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우리 딸 말씀,

" 그냥 볼 때는 검정 같긴 한데, 햇빛 아래서 보면 파랑 계통으로 보이기도 해."

이런 이 애매모호한, 어느 쪽 편도 안들고 중립을 지키겠다는 딸...의 괘씸죄까지 더해져

아침 내내, 오후 내내 화가 잔뜩 나버렸습니다.

 

 

 

이틀 갔습니다.

싸한 분위기...

하지만 어느날처럼, 우리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어느 순간 화해를 했고,

며칠 지나 사이 좋게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저녁을 먹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틈 타, 우리 딸,

" 며칠 전에 왜그랬어? 다 큰 사람들이...마흔이 넘어서, 그깟 가방 색깔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잘 봐...그냥 보면 검정 색같지만 밝은데서 보면 어두운 남색이라 파란계통 맞아."

 

그러게요.

같은 얘기도 분위기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들려지는 걸까?

가방 안잃어버리고 잘있으면 된거지, 그깟 색깔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마흔이 넘은 사람들이...

^^

부부싸움은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작이 되는건지...

그래, 네가 맞다...맞다고 치자!

라고 생각하면 간단히 끝날 일인데도,

딱 그 순간만큼은 그게 힘드니 말이예요.

 

첫 부부 싸움을 했던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첫 싸움을 하고, 아무래도 이 사람과는 못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죠.

이런 걸 고백하면

남편은 펄쩍 뜁니다.

'난 너랑 헤어진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 본적 없어!' 라고요...

더 우스운건,

'나한테 왜 한번도 먼저 사과 안해?'라고 물으면 언제나 이런 대답을 한다는거죠.

'난 잘못 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기 때문에,

결혼 기간 동안 너에게 사과 할일이 하나도 없었다!'라구요.

 

남자는 정말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온 모양입니다.

 

그래도 조금씩 생각의 차이, 생활 습관의 차이를 좁혀가면서

이 사람과 함께 산지 십사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연애 기간까지 합치면 도합 22년입니다.

22년이면 이 사람이 제 곁에 없었던 시간보다는 제 곁에 있었던 시간이 훨씬 더 많은 셈이네요.

 

 

오늘은 결혼 14주년입니다.

^^ 

 앞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아가고

깨닫게 될까요?

캐도 캐도 그 신비함이 끝이 나질 않아, 여전히 우리 부부는 처음 만난 스무살 그 시절만 같습니다.

 

2011.4.20